스페인 거장 고야의 판화 한자리에…대구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입력 2026-10-02 15:06:32 수정 2026-10-02 15: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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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벨기에 리드미술관이
고야 판화 '전쟁의 참화' 기증
인간의 비극 직시하고 기록한
에칭 판화 연작 41점 전시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6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6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6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프란시스코 데 고야, 나는 그것을 보았다(yo lo vi).
프란시스코 데 고야, 나는 그것을 보았다(yo lo vi).

황량하게 폐허가 된 도시. 피난 행렬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울부짖으며 프랑스군에 끌려가고 있다. 오른쪽에는 뒤를 돌아보며 우는 아이와 아이를 데려가려는 엄마가 보인다. 작품의 크기는 고작 가로 23cm·세로 16cm. 표정 하나, 옷깃 주름 하나까지 섬세한 터치로 표현해낸 이 작품은 작지만 강렬한 울림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대표 판화 연작 '전쟁의 참화' 중 하나다. 작품의 제목은 '나는 그것을 보았다'. 고야는 전쟁의 실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자신뿐 아니라 관람객 모두가 이 비극적인 장면의 목격자임을 얘기한다.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세계적인 거장 고야의 이 작품이 지금, 대구미술관 6전시실에 걸려있다. 대구미술관 개관 15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올해 초 벨기에 선박회사 트랜스페트롤 회장이자 리드미술관 관장인 해리 루텐이 대구미술관에 고야의 '전쟁의 참화' 연작 82점 중 41점을 기증하며 성사됐다. 이 소식을 들은 HD현대중공업은 작품 운송을 후원하기도 했다.

앞서 해리 루텐 관장은 2023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를 찾은 바 있다. 당시 미술관에 좋은 인상을 받았고, 자신의 소장품이 더 넓은 곳에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는 게 대구미술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대구미술관을 찾은 야스퍼 드 페이지 리드미술관 큐레이터는 "고야의 작품을 한국에 기증하게 돼 영광"이라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 고야 작품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해리 루텐(오른쪽) 벨기에 리드미술관 관장과 강효연 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이 지난 2월 열린 기증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해리 루텐(오른쪽) 벨기에 리드미술관 관장과 강효연 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이 지난 2월 열린 기증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6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6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고야의 판화연작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벨기에 리드미술관의 야스퍼 드 페이지 큐레이터가 최근 대구미술관을 찾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고야의 판화연작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벨기에 리드미술관의 야스퍼 드 페이지 큐레이터가 최근 대구미술관을 찾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천재 화가' 고야는 기존에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 강렬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1789년 43세에 스페인 궁정화가로 임명돼 왕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부와 지위를 모두 얻은 화가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큰 병을 앓아 청력을 잃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전환점을 맞는다. 주문 받은 초상화뿐 아니라 자신만의 판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 이 때다. 고야는 1808년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공 당시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겪은 전쟁의 비극을 판화로 기록했다.

전시에서 공개되는 '전쟁의 참화' 연작은 1810년~1820년 사이 제작됐으나 고야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다. 작가 사후 35년이 지난 1863년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으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1906년 인쇄된 4번째 판본이다.

판화집은 전쟁(Guerra), 기근(Hambre), 암시적 카프리초(Caprichos enfáticos)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있으며 스페인 독립전쟁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고야의 판화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당시의 여느 전쟁 그림처럼 국가나 군대의 승리를 찬양하고 영웅의 관점에서 그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고야는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과 공포를 화면의 중심에 놓고, 참상을 고발하듯 비극적인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고야가 직시했던 역사적 현장과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체감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는 "리드미술관의 기증 덕분에 대구미술관이 세계적인 거장 고야의 대표 연작을 소장하고 시민들에게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승리자의 영웅담 대신 이름 없는 민중의 고통을 화면의 중심에 세운 고야의 서사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이어지며 도슨트 및 참여형 연계 프로그램이 전시 기간 중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