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막이 파열된 임신 24주 임신부가 제주에서 울산까지 소방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불과 일주일여 전에는 경북 예천에서 양수가 터진 임신 33주 임신부가 대구·경북에서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헬기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
저출생이 국가적 과제로 거론되는 대한민국에서 정작 아이를 낳으려는 임신부들이 병원을 찾아 수십·수백㎞를 이동하고, 때로는 헬기까지 타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4시 22분쯤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양막이 파열된 임신 24주 차 30대 임신부를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소방본부는 소방헬기 '한라매'를 투입해 이날 오전 8시 3분쯤 울산지역 종합병원으로 임신부를 옮겼다.
◆예천에선 대구·경북 병원 못 찾아 부산까지
비슷한 사례는 불과 일주일여 전에도 있었다. 지난 9월 24일 경북 예천에서 임신 33주 차 30대 임신부의 양수가 파열됐다. 조기분만 가능성이 있어 중증 환자로 분류됐지만 대구·경북에서는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한 것.(매일신문 9월 25일 '대구·경북서 병원 못 찾은 예천 33주 산모…헬기 타고 부산 가서 출산' 기사)
결국 소방당국은 부산지역 병원을 확보한 뒤 경북소방 헬기를 투입했다. 임신부는 신고 접수 2시간 56분 만에 부산 병원에 도착했고 이후 아이를 출산했다.
제주와 경북 예천의 사례 둘 다 임신부가 응급 상황 땐 다른 시·도까지 헬기로 이동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 분만 의료 인프라의 현실을 보여준다.
◆5년간 1980건이 50㎞ 이상…경북은 전국 최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아 언론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5년 동안 119구급대가 임산부를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는 전국 2만2천500건이었다.
이 가운데 1천980건, 8.8%는 병원까지 50㎞ 이상을 이동했다. 장거리 이송 건수는 경북이 418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충남 416건, 경기 334건 순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격차는 더 극명하다. 강원은 전체 임산부 이송 430건 가운데 146건, 무려 33.9%가 50㎞ 이상 장거리 이송이었다. 충남 24.0%, 경북 21.1%, 충북 20.9%, 전남 20.3% 등 비수도권에서 높은 비율이 집중됐다.
반면 서울은 3천360건 가운데 9건, 0.27%에 불과했다. 강원과 약 127배 차이다. 광주는 50㎞ 이상 장거리 이송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응급 상황에서 병원까지 가야 하는 거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다.
◆'헬기 이송' 대비 훈련까지…예외적 상황이라기엔 반복되는 현실
지난 9월 30일 부산에서는 고위험 임산부와 신생아의 안전한 항공 이송을 위한 합동훈련도 진행됐다. 부산소방과 의료진은 헬기 안에서 응급출산이 발생하는 상황까지 가정해 처치와 인계 절차를 점검했다. 훈련은 실제 항공 이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분만과 신생아 처치 상황에 대비해 소방과 의료진의 협업체계를 점검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동시에 임산부·신생아의 헬기 이송이 더 이상 극히 예외적인 상황만은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필요한 대비지만, 별도의 항공 이송 훈련까지 해야 할 정도로 임산부의 장거리·헬기 이송이 현실적인 의료 과제가 됐다는 점은 지역 분만 인프라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100곳 전화하고도 병원 못 찾아…'거리'보다 심각한 수용 문제
더 큰 문제는 단순히 병원이 멀리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경기 광명에서는 한 임산부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 위해 전국 100곳 넘는 의료기관에 연락하면서 신고부터 병원 도착까지 6시간 15분이 걸린 사례가 있었다. 충북 청주에서도 80곳 넘는 병원에 수용을 요청한 끝에 이송에 6시간 7분이 걸렸다.
신고 접수부터 병원 도착까지 2시간 이상 걸린 비율도 강원이 7.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충북 6.3%, 충남 5.6% 등이 뒤를 이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구급차나 헬기를 더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분만을 담당할 병원과 의료진, 고위험 임신부를 받아줄 신생아·산모 집중치료 인프라가 지역마다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지 않는다면 119가 아무리 빨리 출동해도 목적지를 찾지 못하는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