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품은 광주, 대구 제치는 날 온다?…'4대 도시 탈락' 예상 시점 계산해보니 [금주의 이슈]

입력 2026-09-28 0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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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모델 가상 시뮬레이션

올해 7월 13일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 상가 외벽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가운데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올해 7월 13일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 상가 외벽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가운데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서울, 부산, 대구.

현대사에서 꽤 오랜 기간 한국의 3대 도시를 말할 때 쓰던 순서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이 인구와 경제 규모에서 대구를 앞서면서 요즘 3대 도시는 서울, 부산, 인천을 가리킨다. 인지도를 따져도 'K-' 수식어가 붙는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세계구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 그리고 무역과 여객에서 한국의 양대 관문인 부산과 인천이 세 손가락 안에 나란히 열거된다. 대구는 그 다음 손가락에 포함돼 '4대 도시'쯤을 형성한다.

그런데 10년, 20년 뒤에도 이 순서가 그대로일까? 최근 광주에 AI(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반도체 산업이 집중되는 흐름을 보면 대구 시민 입장에서는 한 번쯤 긴장감을 느낄 만한 질문이다.

광주가 서울, 부산, 인천에 이어 4대 도시가 된다면? 또는 지역 구도를 따져 중부의 서울과 영남의 부산, 호남의 광주가 지도로 바라보기에도 균형감 있는 3대 축을 형성한다면?

당장 광주가 내일 대구를 추월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도시의 순위는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기업 투자와 산업시설, 일자리, 청년 인구가 장기간 쌓이며 어느 순간 인구와 지역내총생산(GRDP) 수치에 결과가 찍힌다.

그 변화의 씨앗이 올해 광주에 집중적으로 뿌려지고 있다.

◆삼성·SK 반도체 팹이 광주로…250만평 국가산단

2026년 광주의 산업 지형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광주 군공항 일대 약 826만㎡(250만평)가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초기 생산공장 수요를 반영한 규모로, 정부는 향후 협력기업과 연구시설, 정주 기능까지 담기 위한 추가 확장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들도 현장을 찾아 부지 규모와 전력·용수, 교통망을 점검했다. 당초 팹 4기 건설 계획에서 장기적으로 9기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전력과 용수 문제를 따지는 우려가 있기는 해도, 250만평 국가산단을 받아들일 광주의 기존 산업 기반이 아주 백지는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광주 GR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8.5%였고, 2023년 제조업 생산액 기준 반도체 비중도 8.5%에 달했다. 여기에 자동차·AI 산업과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결합하는 그림이다.

단순히 공장 몇 채가 들어오는 수준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8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난 8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2차 점검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지정된 광주 군 공항 부지와 관련해 "국방부는 2028년 중순까지 광주기지의 기능을 다른 군 공항으로 임시 배치, 광주 군 공항 기지가 반도체 산업단지로 조기에 활용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이날 광주 군 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인 제1전투비행단 훈련기 모습. 연합뉴스

◆공장 들어오면 끝? 사람·돈·아파트도 따라온다

대규모 반도체 팹이 실제 가동되면 변화는 공장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팹마다 수천 명의 직접 고용이 발생하고, 소재·부품·장비 업체와 연구시설, 물류·서비스 기업이 뒤따를 수 있다. 고소득 기술인력이 유입되면 주거와 교육, 상권 수요도 함께 커진다.

실제로 광주에서는 이미 부동산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내내 하락했던 광주 아파트 매매가격은 7월 상승 전환했고, 8월에는 상승폭이 더 커졌다. 반도체 국가산단 예정지와 가까운 광산구와 서구의 움직임이 특히 두드러졌다. 신규 분양시장에서도 '반도체 수혜 단지'라는 표현이 마케팅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산업단지가 도시의 기대 심리부터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인천이 대구 추월한 현대사 잊었나?

여기서 대구가 긴장할 이유가 생긴다. 광주가 반도체 산업을 실제 성장으로 연결하면 인구와 GRDP, 도시 브랜드가 동시에 움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당장 대구보다 커지는 것은 쉽지 않다. 대구는 여전히 23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도시이고, 산업·교육·의료·상업 기반 역시 광주보다 크다. 그렇게 대구권을 형성하며 TK(대구경북)는 물론 경남 일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형성해온 전통도 있다.

하지만 과거 대구가 인천에 인구 순위를 내준 과정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수도권 팽창, 인천국제공항과 항만, 송도·청라 등 신도시 개발과 산업시설 확충이 수십 년 쌓인 끝에 1999년 말 주민등록인구 기준 인천이 252만4천여명, 대구가 251만7천여명으로 집계되며 처음 순위가 뒤집혔다. 1990년만 해도 대구 인구는 약 223만명, 인천은 약 182만명으로 격차가 40만명 넘게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9년 만에 인천이 대구를 추월했다. 도시 간 경쟁 구도에서 이런 일은 다시, 또 다시, 반복해 일어날 수 있다.

광주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청년 일자리와 기업, 인구를 빨아들이고 광역통합 효과까지 제대로 활용한다면 먼 훗날 '서울·부산·인천·광주', 내지는 '서울·부산·광주·인천'이라는 도시 순위가 등장하는 장면도 상상만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때 대구가 '전통의 3대 도시'라는 과거의 명성만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미 늦다.

5극 3특 도시권 예시. 연합뉴스
5극 3특 도시권 예시. 연합뉴스

◆광주가 커지는 게 문제?…대구가 멈추는 게 문제!

즉, 관점을 적확히 설정해보자. 광주가 커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구가 멈추는 게 문제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군공항 이전과 사업시행자 선정, 기업의 최종 투자 결정, 막대한 전력과 용수 확보가 모두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광주는 이미 정부와 대기업, 지방정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그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구는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건 대구경북 행정통합이다. 광주·전남 통합이 반도체 투자와 연결되면서 이를 지켜본 대구경북 지역사회에서는 "도시와 산업의 체급을 키워야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끌어올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의 경제·행정권으로 묶이면 인구와 면적뿐 아니라 산업 기반도 크게 넓어진다. 대구의 서비스·의료·교육 기능과 구미의 전자·반도체, 포항의 철강·이차전지, 경주의 자동차부품·관광 등을 한 경제권으로 묶는 그림도 가능하다. 단순한 행정구역 합병이 아니라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대형 프로젝트를 받아낼 체급'을 만드는 통합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역시 비슷한 과제다. 공항 하나 새로 짓는 것으로는 도시 순위를 바꾸기 어렵다. 공항 주변에 어떤 산업을 붙이느냐가 핵심이다.

반도체 후공정과 항공물류, 미래모빌리티, 방산, 의료기기, 식품수출 등 항공과 직접 연결되는 산업을 신공항 경제권에 묶는 전략이 필요하다. 광주가 반도체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과 용수, 주택과 교통까지 동시에 설계하듯, 대구도 신공항을 하나의 거대한 산업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재정·SOC 지원을 얼마나 끌어내느냐도 중요하다.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매일신문DB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매일신문DB

◆추경호·이철우 다시 만난다…이번엔 '사진' 다음이 보여야

마침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는 10월 6일 대구시청에서 다시 만난다. 지난 7월 29일 경북도청 회동에 대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답방으로, 임인환 대구시의회 의장과 김희수 경북도의회 의장도 함께해 신공항과 행정통합 등에 대한 공동성명을 낼 예정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의 정기국회 처리와 2028년 통합특별시 출범, 대구경북신공항 적기 개항, 공공기관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이 테이블에 오른다.

그러나 광주가 이미 통합과 대규모 반도체 투자라는 결과물을 연결하고 있는 시점이라면 대구경북에는 지난 회동보다 훨씬 선명한 전략과 전술이 요구된다. 두 단체장이 만나 손을 맞잡고 차를 마신 뒤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산업을 어디에 유치하고, 신공항과 어떻게 연결하며, 특별법과 국가 지원을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지까지 한 단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마지막 승부는 '사람'

마지막은 결국 사람이다. 도시의 인구를 결정하는 건 출산율만이 아니다. 성장한 청년들이 그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느냐가 더 직접적이다. 대구가 청년에게 "남아달라"고 호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대구에 남는 편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커리어에 유리하다는 평판이 확실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 로봇·미래모빌리티·첨단소재·반도체 장비·방산 같은 산업에서 고임금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가 결국 장기적인 도시 순위를 결정한다.

서울, 부산, 대구로 시작했던 세 손가락에서 대구는 이미 한 번 밀려났다. 다음번에는 네 번째 손가락마저 내줄 것인가. 그 답이 통계로 확인되는 날은 10년 뒤나 20년 뒤일지 몰라도, 순위를 가르는 선택은 지금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광주와 대구의 미래 상상 풍경. AI로 생성한 이미지
광주와 대구의 미래 상상 풍경. AI로 생성한 이미지

◆광주가 대구를 추월하는 해, 3개 모델 가상 시뮬레이션

그럼에도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광주가 실제로 대구의 '4대 도시' 자리를 넘보는 시점은 언제쯤일지 말이다. 미래를 정확히 맞힐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가정(모델)을 놓고 계산해볼 수 있다.

▷첫번째는 '인천 모델'이다.

1990년 말 대구 인구는 약 222만9천명, 인천은 약 181만8천명으로 대구가 41만명 넘게 앞섰다. 그러나 이후 9년 동안 인천 인구가 38.5% 늘고 대구는 12.5%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1999년 말 처음 순위가 뒤집혔다.

이때의 연평균 성장속도를 현재 광주와 대구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두 도시 인구가 만나는 시점은 대략 2047년 전후로 계산된다. 과거 인천이 대구를 따라잡았던 속도를 광주가 그대로 재현한다면 약 20년 뒤인 셈이다. 물론 이 계산은 저출생 흐름은 반영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반도체 급성장 모델'이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획대로 들어서고 협력기업과 기술인력 유입이 본격화돼 광주 인구가 연평균 3%씩 증가한다고 가정해보자. 반대로 대구는 청년 유출과 자연감소 등의 영향으로 매년 1%씩 감소한다고 놓는다.

이 경우 두 도시의 인구 규모는 약 12년 뒤인 2038년 전후에 교차한다.

물론 상당히 공격적인 가정이다. 이렇게 2030년대 안에 광주가 대구를 추월하는 장면이 나오려면 광주의 고속 성장과 대구의 인구 감소가 동시에 어느 정도 지속돼야 하는지 보여준다.

▷세번째는 '경제력이 먼저 뒤집히는 모델'이다.

도시의 체급이 반드시 인구 순위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생산시설이 몰리면 인구보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먼저 움직일 수도 있다.

광주의 GRDP를 약 51조원, 대구를 약 73조원이라는 출발점에 놓고 반도체 투자 효과로 광주 경제가 매년 6%, 대구가 매년 3%씩 성장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두 지역의 경제 규모가 비슷해지는 시점 역시 2030년대 후반, 대략 2038~2039년 전후로 계산된다.

즉 인구는 여전히 대구가 앞서더라도 경제 규모와 기업 투자, 도시 브랜드에서 광주가 먼저 대구를 위협하는 장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