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캉이 보며 또 "사람이 미안해"…늑구·세로·뽀롱이·사순이·오삼이에게 쏟아진 연민 [시사뒷담]

입력 2026-09-24 17:53:15 수정 2026-09-24 18:12:10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지난 9월 18일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서 3∼4m 크기의 무태상어가 헤엄치고 있다. 신고받은 해경은 현장에 연안구조정 등을 투입하고 소방당국, 국립수산과학원과 함께 외해 쪽으로 상어를 유도하는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8일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서 3∼4m 크기의 무태상어가 헤엄치고 있다. 신고받은 해경은 현장에 연안구조정 등을 투입하고 소방당국, 국립수산과학원과 함께 외해 쪽으로 상어를 유도하는 중이다. 연합뉴스

부산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들어온 상어 한 마리가 추석 연휴의 '스타'가 됐다. 몸길이 3~4m의 무태상어로 추정되는 이 상어에는 '부캉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시민들은 북항으로 몰려가 모습을 기다린다. 이제 관심은 "상어가 나타났다"를 넘어 "지금 어디 있나" "왜 바다로 안 나가나" "밥은 먹고 있나" 같은 안부의 말들로 옮겨갔다.

웹게임
'부캉이 지금 있나' 사이트

◆상어 한 마리가 '부캉이'가 되자

관심은 곧 행동으로 번졌다. 부산의 한 대학원생은 시민 제보로 현재 목격 위치를 공유하는 '부캉이 지금 있나' 사이트를 만들었고, 무료 웹게임 '부캉이의 집으로 가는 길'까지 등장했다. 기업과 지자체는 상어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들었으며, 부산 연고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가 부캉이 등장 이후 5연승을 하자 김태형 감독이 "상어 유니폼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로 야구 밈까지 붙었다.

관심이 지나치면 문제도 생긴다. 죽은 생선 등을 먹이라며 수로에 던지는 사람이 등장했고, 부캉이를 찍다 빠뜨린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사람이 직접 수로로 내려가는 위험한 장면도 나왔다. '귀여운 국민 상어'라는 감정과 실제 야생동물을 안전거리 밖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기 시작한 셈.

대전 오월드 탈출 이후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늑대
웹게임 '부캉이의 집으로 가는 길'

◆게임 속에도 등장한 '늑구의 기운'

흥미롭게도 부캉이 웹게임에는 지난 4월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던 늑대 '늑구'를 패러디한 '늑구의 기운'이라는 아이템까지 등장한다. 불과 몇 달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동물이 새로운 동물 스타의 서사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길잃은 동물들 간 세계관의 결합.

늑구는 오월드를 빠져나간 뒤 9일 동안 대전 일대를 돌아다니다 생포됐다. 수색 초기에는 맹수 탈출에 대한 불안이 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사히 잡혀야 한다"는 응원이 커졌다. 돌아온 뒤에는 '늑구빵'이 등장하고 스포츠팀 승리까지 '늑구 효과'와 연결하는 농담이 나왔다. 오월드 재개장 첫날에는 늑구를 보려는 시민들이 몰렸다. 이게 부캉이가 나타난 부산 지역사회에서도 재현되는 모습이다.

2023년 3월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인근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이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등에 따르면 이 얼룩말은 이날 오후 2시 50분께 공원 내 우리 주변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부수고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대전 오월드 탈출 이후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늑대 '늑구'가 올해 4월 13일 오후 10시 43분께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목격됐다. 사진은 목격한 시민이 찍은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2024년 김천김밥축제 당시 경북 김천시 사명대사공원에 설치된 김천시 캐릭터 오삼이. 김천시 인스타그램
2023년 3월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인근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이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등에 따르면 이 얼룩말은 이날 오후 2시 50분께 공원 내 우리 주변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부수고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세로' '뽀롱이' '사순이'…이름을 얻으면 사연도 생겼다

과거 비슷한 사례들이 더 있다. 2023년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해 도심을 돌아다닌 얼룩말 '세로'는 부모를 잇달아 잃고 홀로 생활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단순한 '탈출 얼룩말'에서 외로운 개체로 받아들여졌다. 포획 뒤에는 세로를 보기 위해 관람객이 몰렸고, 이후 여자친구 '코코'가 생겼다는 소식과 코코의 죽음까지 뉴스가 됐다.

2018년 대전 오월드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는 결국 사살됐다. 그러자 오월드 앞에는 국화와 추모글이 놓였고 온라인에서는 "사람의 실수인데 왜 동물이 죽어야 하나"라는 비판과 동물원 환경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2023년 경북 고령의 민간목장에서 탈출한 20살가량의 암사자 '사순이' 역시 1시간여 만에 사살됐다. 당시에도 시민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과 별개로 "생포할 수 없었느냐"는 동정론이 뒤따랐다.

동물원을 탈출한 사례는 아니지만 반달가슴곰 '오삼이'도 포함시킬 만한 사례다. 원래는 관리번호 KM-53이었지만 숫자 53에서 따온 '오삼이'라는 이름이 붙고 지리산 밖을 계속 돌아다니자 '콜럼버스 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의 이동경로와 교통사고, 회복이 계속 뉴스가 됐고 2023년 포획 과정에서 숨지자 안타까움이 컸다. 그렇게 흥미와 안타까움의 서사가 누적, 오삼이는 현재 경북 김천시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2024년 김천김밥축제 당시 경북 김천시 사명대사공원에 설치된 김천시 캐릭터 오삼이. 김천시 인스타그램

◆'상어 한 마리'보다 '부캉이'가 더 걱정되는 이유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이런 현상을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련 연구에서도 야생동물을 하나의 종이나 숫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개체'로 인식할수록 공감과 보호 행동이 커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동물에게 이름과 서사를 부여하는 의인화가 사람의 정서적 연결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다만 한국 온라인 문화에서는 이 과정이 유난히 빠르게 압축돼 나타난다. 이름을 붙이고,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고, "밥 먹었나"며 안부를 묻고, 밈과 게임을 만들고, 지역 스포츠와 연결하고, 급기야 관광·상품 캐릭터로까지 발전하는 수순이다.

'길이 3.5m인 무태상어'라고 부를 때와 '부캉이'라고 부를 때의 느낌은 이미 다르다. 이름을 얻는 순간 익명의 야생동물은 한 마리의 '누군가'이자 친근한 '캐릭터'가 된다.

그래서 늑구를 걱정했던 사람들이 몇 달 뒤 다시 부캉이의 안부를 묻는 게 이상하지 않다. 때로 그 관심은 동물복지 논의를 낳고, 때로는 위험한 먹이주기나 과도한 상업화로 흐르기도 한다. 부캉이 열풍은 결국 우리가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구경거리'에서 '이름을 아는 개체'로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