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배상 123건 중 70건은 연휴 끝난 뒤 처리 파손 42.3% 최다, 피해구제 76.5%가 5대 택배사
최근 5년간 명절 기간에 접수된 택배 소비자 상담이 9천548건인데, 실제 배상으로 이어진 것은 265건, 2.8%에 그쳤다. 국회 정무위원회 손명수 의원실이 21일 공개한 한국소비자원의 연도별 명절기간 택배 소비자상담 현황 자료에서다. 배상 여부를 가르는 것은 상자 속 한우가 상했는지 과일이 멍들었는지가 아니다. 수령 후 14일 안에 무엇을 남겨 두었는지다. 표준약관은 그 기한을 넘기면 택배사 책임이 사라진다고 못 박고 있다.
◆ 상담 9548건 가운데 정식 구제는 641건뿐
같은 자료를 보면 상담 9천548건 중 정식 피해구제 절차로 넘어간 것은 641건이다. 이 가운데 금전 배상으로 끝난 건수가 265건, 구제 신청 기준으로도 41.3%다. 나머지는 정보제공 120건, 합의 조정 94건 등으로 처리됐다.
상담 사유는 배송 지연을 포함한 계약불이행이 4천503건(47.2%)으로 가장 많았다. 물품이 깨지거나 상해서 들어온 품질 관련 상담이 1천800건으로 뒤를 이었다.
◆ 추석 배상 123건 중 70건은 연휴가 끝난 뒤
이 자료에서 5년간 배상 265건의 내역은 설 142건, 추석 123건으로 갈린다. 추석 배상 123건 가운데 70건(56.9%)은 명절 연휴가 지난 뒤에야 처리됐다. 연휴 전 처리는 53건이다.
상담 접수 시점도 비슷하다. 추석 계약불이행 상담은 명절 전 954건, 명절 후 1천40건으로 모두 1천994건이었다. 선물이 제때 오지 않았다는 불만이 연휴가 끝난 뒤 더 쏟아진다는 뜻이다. 그 사이 냉동·냉장 식품은 이미 상해 있다.
◆ 파손 42.3%, 피해구제 76.5%가 상위 5개 업체
소비자원이 지난해 9월 낸 택배 피해예방주의보를 보면 3년간 접수된 피해구제 1천149건 중 훼손·파손이 372건(42.3%)으로 가장 많았다. 분실은 37.1%였다. 같은 기간 신청의 76.5%(879건)가 상위 5개 택배사에 몰렸다.
물량이 원인의 한 축이다. 국토교통부가 2024년 발표한 추석 대책 자료를 보면 명절 전후 전국 일평균 택배 물량은 1천850만 박스다. 평시 1천660만 박스보다 10% 이상 많다.
◆ 14일 넘기면 책임 소멸, 가액 안 적으면 한도 50만원
공정거래위원회 택배 표준약관 제25조 제1항은 운송물 훼손을 수령일로부터 14일 안에 통지하지 않으면 사업자 손해배상 책임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일부 멸실이나 연착의 배상청구 소멸시효는 1년이다.
배상액의 상한은 운송장에서 정해진다. 제20조 제2항에 따라 운송장에 물품 가액을 적지 않으면 배상 한도는 최고 50만원이다. 한우 세트든 고가 건강식품이든 빈칸으로 접수했다면 그 이상은 받기 어렵다.
거꾸로 증빙을 갖추면 처리는 빠르다. 개정 표준약관은 고객이 손해 입증 서류를 낸 날부터 30일 안에 택배사가 먼저 배상하도록 했다. 택배사끼리 책임을 미루며 소비자를 세워 두는 일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배송이 늦어졌을 때는 지연일수에 따라 운임의 50%씩, 최대 200%까지 배상받는다.
◆ "면책 동의했으니 배상 없다"는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원 분쟁 사례를 보면 결과는 증빙에서 갈렸다. 명절 과일 선물세트가 짓눌린 채 도착한 사례에서는 수령 즉시 사진을 찍고 14일 안에 이의를 제기해 전액 환급을 받았다. 반면 송장 스티커가 떨어져 열흘간 지연된 냉동식품이 전량 상한 사례에서는 택배사가 지연 면책 동의를 이유로 배상을 거부했다.
면책 동의가 만능은 아니다. 소비자원은 파손 면책에 서명했더라도 택배사가 안전하게 운송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서예 액자가 깨진 사건은 면책확약서에 서명이 있었지만 택배사의 입증이 부족해 쌍방 50% 분담으로 합의됐다.
◆ 접수 화면의 '면책 동의'와 입증 책임
의원실은 자료를 내면서 택배사들이 접수 단계에서 모바일 면책 동의를 기본값처럼 유도해 지연·파손 책임을 피하는 수단으로 쓴다고 지적했다. 약관의 배상 원칙과 실제 접수 화면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한계는 소비자 쪽에도 있다. 공정위는 수령 후 14일이 지나 통보하거나 상자와 운송장 실물을 바로 버리면 과실 입증이 어려워 배상이 거절된다고 안내한다. 피해가 생기면 1372 소비자상담센터나 소비자24로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된다.
명절 택배 피해구제의 실효성은 다음 달 15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의 소비자원 국정감사에서 다시 다뤄진다. 관계자는 "매년 명절마다 택배사들의 계약불이행으로 인한 민생 피해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률이 저조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라며 "불합리한 택배 표준약관 개정과 분쟁 조정 절차 강화 등 소비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