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부담에 황혼 이혼"… 배우자 상속세 제도 개편 목소리

입력 2026-09-23 13: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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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상속세 대상자 2만2천명, 대구는 748명
"과세표준 공제 20년 이상 유지, 사실상 증세"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 세제 개편 목소리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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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사업가 김모(73) 씨는 배우자와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다. 또래 지인들 사이에서 부음 소식이 들려오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으면서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내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상속 과정에서 떠안게 될 부담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차라리 생전에 부부로서 삶을 정리하고, 남은 인생을 각자 편안하게 보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등의 재산을 물려받을 때 부과하는 상속세가 더 이상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아니라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소득·자산 규모가 커졌지만 과세 기준은 20년 넘게 제자리에 머물면서 과세 대상자가 부쩍 늘어난 탓이다. '사별 전 이혼하는 것이 최고의 절세 방안'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부간 상속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속세 최대 50% 부과

현행 상속세·증여세법은 배우자가 사망해 재산을 물려받을 때 과세표준에 따라 최대 50% 세율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상속세 과세표준은 ▷1억원 이하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 ▷30억원 초과 등 5개 구간으로 나뉘며, 과세표준에 따라 세율 10~50%를 매긴다. 과세표준을 단계적으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5단계 초과누진세율 구조다.

과세 기준이 되는 상속세 과세표준은 사망자가 남긴 상속재산에서 각종 상속공제와 장례비, 채무 등을 차감해 산정한다. 배우자에게는 실제 상속받는 금액에 따라 최소 5억원에서 최대 30억원을 공제하는 '배우자 상속공제'가 적용된다. 배우자의 실제 상속액이 5억원을 넘어가는 경우에는 30억원 한도 내에서 법정 상속분에 따른 상속액 등을 기준으로 공제하게 된다.

공제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최대 50% 세율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부부가 이혼하면서 재산분할을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증여세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재산분할을 혼인 중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청산·분배하는 성격으로 보고, 상대 배우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세금 폭탄을 맞느니 이혼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속세 대상 2만명 돌파

현행 상속세 체계는 지난 2000년부터 시행돼 왔다. 소득 수준과 가구당 자산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 과세표준이 20년 넘게 유지되면서 상속세 과세 대상은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국세청과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부과가 결정된 사람은 전국 2만2천524명, 대구 748명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지난 2000년 1천389명에 불과하던 상속세 결정 인원은 2020년 1만181명으로 7배 이상 불어났고 2024년(2만1천193명) 2만명을 돌파했다. 대구에서도 지난 2000년 128명에서 2020년 439명, 2024년 833명으로 늘었다.

더해서 국세청은 상속·증여 부동산을 시가에 맞게 평가하고 과세하기 위한 '상속·증여재산 감정평가 사업'도 확대 시행하는 추세에 있다. 지난 2020년 개별 기준시가가 공시되지 않는 중소규모 건물, 이른바 '꼬마빌딩'을 대상으로 감정평가 사업을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주거용 부동산으로 감정평가 대상을 넓혔다.

상속재산과 증여재산은 매매가 등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준시가 등 보충적 평가 방법을 이용하게 돼 있다. 최근 들어서는 주거용 부동산 거래가격이 높아지면서 일부 아파트, 주택 공시가격이 매매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 데다 이런 초고가 아파트, 주택은 비교 대상 물건이 거의 없어 시세 확인이 어렵다는 게 국세청 설명이다.

◆자산 느는데 세제 그대로

상속재산을 계산할 때 '사전 증여재산'을 포함하는 점도 세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예를 들어 배우자에게 6억원 상당 재산을 증여하고 10년 안에 숨지는 경우 남은 배우자는 이 재산을 포함해 세금을 계산해야 한다. 정작 증여 당시에는 배우자 증여공제(10년간 최대 6억원)로 인해 내지 않은 세금이 상속 시점 부담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별 후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전 배우자와 살던 집을 처분하고 이사하는 일도 적잖다는 게 세무업계 설명이다. 지역 한 세무사는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많고, 특히 부모님 세대에선 금융자산은 거의 없이 부동산만 소유한 경우가 많다"며 "상속이 일어나면 당장 세금을 내야 하는데 현금이나 금융자산이 부족해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세무업계에선 상속세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평균 16억원을 넘은 상황에 과세표준과 공제 기준을 20여년 전과 같이 유지하는 건 사실상 증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장은 "경제 규모가 커지는데 과세표준은 그대로이다 보니 예전 같으면 상속세를 낼 정도가 아닌데도 지금은 내야 하는 납세자가 많아졌다"면서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불로소득에 민감하고, 부의 대물림에 부정적 시각이 있어 상속세가 과도하게 매겨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속세 전면 개편 목소리

부부간 상속세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부간 상속세·증여세 전면 폐지를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고 이를 골자로 한 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부부간 상속이 일어나는 경우 이혼 시 재산분할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공동으로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남은 배우자의 노후 안정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따라붙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과 달리 부부간 상속은 수직으로 일어나는 세대 간 부의 이전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경북 김천시)은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배우자 공제는 사실 상속이 아니라 동일 세대 간 자산 이전이자 오랜 세월 결혼 생활을 함께한 배우자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 것"이라며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 자리에서 "배우자 공제가 27~28년 정도 계속 5억원에 머물러 있는데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물가가 상승한 만큼 중산층이 느끼는 세 부담이 부당하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 그런 부분은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