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밌는 사투리]<4> '번개'를 부르는 우리말의 여러 얼굴

입력 2026-08-21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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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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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잠시 긴장하게 된다. 그러다 하늘 한가운데서 번개가 번쩍인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처럼 신기한 광경을 바라본다.

번개(電光)는 양전기와 음전기가 구름 사이에서 만나면서 순간적으로 밝은 빛을 내는 자연현상이다. 우리가 흔히 '번개'라는 말에도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우리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지역에 따라 번개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 흥미롭다.

표준어 '번개'는 1417년에 간행된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난다. 어원은 '번'(빛, 밝다의 의미)과 '개'가 결합한 형태로 설명할 수 있으며, 처음에는 '번게'와 같은 형태로 쓰이다가 오늘날의 '번개'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번게'에서 '번기'까지
표준어 '번개'의 전국적인 사투리 가운데 가장 널리 나타나는 것이 바로 '번게' 계열이다. 강원·경남·경북·전북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된다.

'번게'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경남과 경북에서는 '번기'라는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번게'에서 변화한 '번개'는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된다.

제주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번게'가 '번개'를 거쳐 '펀개'로 변한 형태가 그것이다.

◇번개에 '불'이 붙으면 '번개불'
번개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말은 '번개불'이다. 말 그대로 '번개'에 '불'이 결합한 형태다. 함경남도와 경상남도 지역에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번개불'이 다시 '번갯불'로 바뀐 형태도 있다. 강원·경기·충북 등에서 나타나는 '번갯불'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번갯불'이라는 말 역시 번개가 내는 강렬한 빛의 모습을 '불'에 빗대어 표현한 우리말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투리 '번들개'

'번들개'는 이름부터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번들하다', '번들거리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들 단어에서 '번들'은 윤이 나거나 빛이 나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에 접미사 '개'가 붙어 '번들개'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 표현은 강원과 경북 지역에서 사용된다.

'번들개' 역시 한 가지 모습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번들개'가 '버들개(강원, 경북)'로 바뀌기도 하고, '번들개(강원·경북)>번드개(전북)>번두개(전남)'처럼 변하기도 한다. 또 '번들개(강원·경북)>번드개(전북)>번즈개>번지개(충남)>버지개>버이개(경남)>베이개(전남)'와 같이 많은 변화를 보인다.

◇'번쩍불'에는 번개의 순간성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말이 '번쩍불'이다.강원지역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 '번쩍'이라는 말에 '불'을 붙여 만든 말이다.

'번쩍'은 빛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번쩍번쩍'과 '반짝반짝'도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일반적으로 '번쩍번쩍'은 '반짝반짝'보다 움직임이 크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의 순간적인 빛을 생각하면 '번쩍불'이라는 표현이 왜 생겨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앞서 살펴본 사투리 '반딧불'에서도 재미있는 언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살펴본 '번개'의 '번' 역시 빛과 관련된 말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불'은 단순히 화(火)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빛'을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과 하늘을 순간적으로 밝히는 번개를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투리는 살아 있는 우리말의 역사
사투리는 단순히 표준어와 다른 '지역의 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언어의 흔적과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투리 연구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를 조사하고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사투리를 한곳에 모아 그 어원을 살펴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우리말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번게'에서 '번들개', '번쩍불'까지. 번개를 부르는 수많은 이름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언어 감각과 삶의 흔적이 살아 있다.사투리는 낯선 말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말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신승원 sinswon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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