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일본 갔다 해방 뒤 고향으로"… 영양 90대 주민들이 기억한 광복과 전쟁

입력 2026-08-12 15: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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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부모 따라 일본행… 해방 전후 12~13살 무렵 귀국
학교 못 다녔지만 글·일본어 익혀… 95세에도 주민 연락처 줄줄 외워

올해 95세인 영양군 영양읍 현리에 거주하는 남도진 할머니(오른쪽)가 전쟁과 광복에 대한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남 할머니는 주민들의 도움을 통해서 인터뷰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동네 주민들의 전화번호를 다 외우실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영진 기자
올해 95세인 영양군 영양읍 현리에 거주하는 남도진 할머니(오른쪽)가 전쟁과 광복에 대한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남 할머니는 주민들의 도움을 통해서 인터뷰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동네 주민들의 전화번호를 다 외우실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영진 기자

"먹고살려고 갔지. 아버지, 어머니, 오빠하고 다 같이 일본으로 갔어."

광복 81주년을 앞두고 만난 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리 남도진(95) 할머니의 기억은 90여 년 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세 살 무렵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남 할머니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해방 전후 열세 살 무렵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 할머니에게 광복은 역사책 속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기억이다. 먹고살 길을 찾아 타국으로 떠났던 가족은 해방을 전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도 전쟁을 겪었고 폭격을 피해 광산 주변으로 이주해 생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아직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귀국했다고 삶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데다 당시 농촌에서는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드물어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

남 할머니는 "학교는 못 다녔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따라 하면서 글과 숫자를 익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지금도 일본어를 일부 기억하고 있다.

열아홉 살에 시집온 남 할머니는 이후 현리에서 약 60년을 살며 딸 하나와 아들 셋을 키웠다. 농사를 지으며 물을 길어 먹던 시절부터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고 흙길이 포장도로로 바뀌는 과정까지 한 마을에서 지켜봤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살고 있는 이봉금(93, 왼쪽), 방순(89) 할머니가 옛날 광복 당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살고 있는 이봉금(93, 왼쪽), 방순(89) 할머니가 옛날 광복 당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광복 5년 뒤 발발한 6·25전쟁은 같은 영양읍에서 살아온 또 다른 90대 주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감천리 이봉금(93) 할머니는 당시 10대였다.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친정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이 할머니는 "6·25 때 부모도 죽고 동생도 죽었다"며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고도 살아가고자 다시 일을 해야 했다"고 기억했다.

전쟁이 끝나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됐다. 이 할머니는 이후 가정을 꾸리고 감천에서 자녀를 키웠다. 한때 100호가 넘을 만큼 주민이 많았던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고, 산업화와 함께 7만명이 넘던 영양지역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나면서 고향이 비어가는 과정도 고스란히 지켜봤다.

두 할머니의 90여 년 삶에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 가난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가 겹쳐 있다. 기록에는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이라는 날짜로 남았지만 이들에게 역사는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가족이었고, 전쟁 속에서 잃어야 했던 부모와 형제였으며 다시 일궈야 했던 논밭과 가정이었다.

남도진 할머니는 "옛날에는 배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배울 수 없었고 먹고사는 것이 먼저였지만, 그래도 보고 배우면서 살아왔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고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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