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17> 돌아온 부두의 탄식 '선창'

입력 2026-08-14 1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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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 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껍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 오도 못할 우라지오'. 이용악의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이국땅 연해주에 머물러야 했던 실향민의 수난이 그 배경이다.

드나드는 배 한 척 없는 북방의 항구에 서서 어슴푸레 떠오르는 고향으로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라지오(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는 두꺼운 얼음이 쌓여 있어,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냉혹한 부두를 서성이며 고향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민중의 비극성이다. 일제강점기 이주민 세대가 겪은 역사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1940년대 고운봉의 노래 '선창'은 그리던 항구로 돌아왔건만 쓸쓸한 부두에는 찬비만 내린다고 한다.

정지용 시인이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탄식했던 농촌적 정서를 부두의 노래로 변주한 것처럼 보인다. 돌아온 항구 역시 식민지의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한 노래 속 화자는 다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는 국권을 빼앗긴 조국의 강산을, '이슬 맺힌 백일홍'은 일제의 신민이 되어버린 조선인을 상징한다.

비내리는 선창가에서 떠나간 연인을 그리는 것은 잃어버린 나라를 떠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시대 정서를 대변한 고운봉의 히트곡 '선창'은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학생층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가사의 문학성과 유려한 선율 그리고 짙은 우수를 지닌 가수의 정제된 창법이 인기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선창'은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도 삶이 고단했던 서민 대중의 애창곡이었다.

고향과 항구를 떠나 머나먼 타관땅을 지향없이 떠돌다가 그리움을 안고 돌아온 선창가에 내리는 찬비는 망국민과 실향민의 눈물이었다.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노래도 수난을 겪었다. 작사가 조명암과 작곡가 김해송이 월북 또는 납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사가와 작곡가의 이름을 바꿔서 가요의 명맥을 유지하는 질곡을 거쳤다. 역사의 격랑은 노래조차 피해가지 않았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에도 '선창가 고동소리'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항구나 부두를 배경으로 한 노랫말이 많은 것은, 만남보다는 이별의 이미지가 강했던 식민지 시절 선창의 숙명적 정서 때문일 것이다. 서사적인 무게감을 내려놓은 서정적 공간으로의 선창(船艙)은 더 그랬다. 부두에서의 사랑이란 애초에 부박(浮薄)한 것이었다. 부평초 같은 사람들의 뜨내기 사랑이 많았다.

사랑 만큼 고귀한 것도 없지만, 사랑 만큼 진부한 것도 없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지만 하루아침에 식어 버리는 게 또한 남녀간의 사랑이다. 그러나 대중가요 '선창'의 중후한 생명력은 역사적인 울림과 민족적 정한에서 비롯된다.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는 단순한 만남과 이별의 공간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나그네적 정서와 유랑민의 탄식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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