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원장 마무리 후 일선 복귀…"기록 읽고 판단하는 일 즐거워"
후배들에겐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사명감 지켜야" 당부
정용달(사법연수원 17기) 대구고법 부장판사가 오는 31일 35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한다.
정 부장판사는 법 이론과 재판 실무에 정통한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대구법원 합창단 초대 단장을 맡았고, 법원 내 수어 통역과 기초 수어교육을 추진하는 등 법원 구성원과 재판 당사자를 위한 활동에도 힘썼다.
대구지법 수석부장판사와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법원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지만 그는 법원장보다 판사로 기억되길 원한다. 지난해 말 대구고법원장에서 부장판사로 복귀한 것도 재판 업무를 더 이어가고 싶어서였다.
정 부장판사는 "연차가 쌓일수록 확신은 옅어지고, 고민은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역법원장을 지낸 뒤 다시 같은 법원의 재판부로 돌아왔다. 당시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는데.
▷내가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다.(웃음) 이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쉬거나 변호사를 하는 게 오히려 막막했다. 기록을 읽고 판단하는 일의 즐거움도 있던 터라, 욕심을 부려봤다.
나이가 들며 업무 처리 능력은 예전보다 줄었을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10년차쯤에는 내 판단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찾아보고, 다른 이야기를 더 듣게 됐다. 과거에는 확신했던 사안도 이제는 다른 결론이 가능하지 않은지 고민한다.
-민사·형사·행정·가사·파산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재판을 맡아봤다. 좋은 재판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록은 선입견 없이 봐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이 개입되면 같은 증거를 보고도 객관적 판단에서 멀어질 수 있다. 후배들에게도 백지상태에서 기록을 보라고 강조한다. 특히 민사재판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다.
당사자가 직접 나오는 재판에서는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재판 결과를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말을 누군가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억울함이 일부 풀릴 수 있다.
-재판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과거 경주지원에 근무하던 시절 재심을 반복해서 청구하던 노인이 있었다. 법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지만 한 시간가량 사정을 들었다. 건강과 주거 상황을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눴더니 갑자기 소를 취하하겠다고 했다. 그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법리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경청하는 법원을 만들려면 판사 한 명에게 배당되는 사건 수가 줄어야 한다. 법관을 늘리고 의료분쟁조정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조정기관을 확대해 법원이 중요한 사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다. 음악은 법관 생활에 어떤 의미였나.
▷중학생 때 형이 사 온 음반을 접한 뒤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도 출근하면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록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
2017년 대구법원 합창단이 만들어질 때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초대 단장을 맡았다.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특히 좋아한다. 두 작곡가의 음악은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정서가 있다.
재판 업무는 긴장과 부담이 큰 일이다. 음악은 그 긴장을 풀고 다시 일에 집중하게 하는 활력소였다. 후배들에게도 업무 밖에서 마음을 돌보고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후배 법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최근 사법부를 두고 외풍이 거세다. 외부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리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고 법관의 사명감을 지켰으면 한다. 동료가 힘들어 보이면 내가 조금 더 맡겠다는 마음도 필요하다. 예전보다 옅어진 동료애를 다시 살렸으면 한다.
-퇴임 뒤 계획은.
▷한 달 정도 쉬면서 국내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이후 법무법인 정관에서 일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