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대구에서 온라인 유통 업무를 담당하는 A씨(38)는 쌓인 메일에 답장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문장의 어조와 핵심 내용만 입력하면 챗GPT가 메일 초안을 만든다.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퍼플렉시티로 자료를 찾고, 긴 보고서는 노트북LM으로 핵심만 추린다. 회의가 끝나면 클로드가 회의록을 정리하고, 코파일럿이 엑셀 데이터를 분석해 그래프와 대시보드로 시각화한다. 급하게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할 때는 젠스파크가 빈 슬라이드를 채운다.
야근을 헌신으로 여기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오래 일하는 것보다 어떻게 일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자료조사와 문서 정리, 데이터 분석, 발표자료 제작까지 업무의 성격에 맞춰 AI를 활용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고 완성하는 사람이 새로운 '일잘러'로 떠오르고 있다. A씨는 "요즘은 AI를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AI를 잘 다루는 능력은 엑셀과 파워포인트에 이은 새로운 직장인의 기본기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새로운 업무 자산이 된 프롬프트
업무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함께 일하는 동료처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경북의 한 중소기업 연구직 B씨(42)는 과거 학술논문과 해외 사이트를 일일이 뒤졌지만, 이제는 AI로 필요한 자료를 추리고 연구 방향을 잡는다. 회사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AI 교육도 진행했다. B씨는 "AI를 어떻게 지시하고 업무에 연결할지를 배우고 나니 작업 시간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AI가 보편화되면서 직장 안에서는 전에 없던 갈등도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롬프트 공유' 문제다. 프롬프트는 AI에 원하는 결과와 조건을 전달하는 지시문으로, 구체성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이 달라진다.
실제로 한 회사에서는 팀장이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막내 직원에게 자신이 만든 프롬프트를 팀원들과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직원은 "퇴근 후와 주말까지 투자해 발전시킨 개인 노하우를 대가 없이 공유하기는 어렵다"며 거절했다. 다른 직원들은 업무 과정에서 만든 결과물인 만큼 조직이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봤지만, 해당 직원은 개인이 축적한 노하우라고 맞섰다.
AI를 잘 쓰는 직장인은 역할과 업무 목적, 결과물의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자료조사부터 초안 작성까지 업무를 단계별로 나눠 반복 수정한다. 이렇게 축적된 프롬프트는 업무 경험이 담긴 '디지털 업무 매뉴얼'이 된다.
◆ AI가 다 한다는 착각
AI의 생산성만 강조할수록 현장에서는 또 다른 압박도 커진다. 일부 경영진은 AI를 인력 감축이나 업무량 확대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한 직장인은 "AI는 초안을 빠르게 만들 뿐, 무엇을 물을지 판단하고 결과를 검수하며 조직의 요구를 조율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리함 뒤에는 위험도 따른다. 고객 개인정보나 계약서, 내부 회의록 등을 공개형 AI에 그대로 입력하면 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 또 AI는 존재하지 않는 통계와 판례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환각' 현상도 발생한다. 숫자와 출처일수록 원문을 반드시 확인하고, AI가 만든 결과물도 사람이 최종 검수해야 한다.
AI 시대의 일잘러는 답을 가장 빨리 복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업무를 AI에 맡길지 판단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일을 구조화하며, 그 결과를 검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AI가 직장인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직장인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AI 시대 노동법 Q&A
생성형 AI가 새로운 업무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직장 안에서도 새로운 법적 쟁점이 생기고 있다. 주요 쟁점을 노을노동법률사무소 노효철 공인노무사에게 물어봤다.
Q. 회사 업무를 위해 만든 프롬프트는 누구 것인가.
A. 프롬프트 자체를 저작물로 본 판례는 아직 많지 않다. 다만 회사 업무 과정에서 작성했다면 업무상저작물이나 영업비밀로 인정돼 회사 자산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Q. AI를 도입했다고 업무량을 늘릴 수 있나.
A. 업무량을 늘리는 것 자체를 노동법이 제한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장근로가 발생하거나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면 근로기준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
Q. AI 활용을 이유로 기존 직원을 줄일 수 있나.
A. 신규 채용을 줄이는 것과 기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별개다. AI로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기는 어렵다.
Q. 회사는 어떤 기준을 마련해야 하나.
A. AI 활용 범위와 승인 절차, 프롬프트 관리 기준 등을 내부 규정으로 정해 둘 필요가 있다. 영업비밀 관리 규정과 함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