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는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직접 응징하는 콘텐츠까지 적지 않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른바 '사적 제재'다. 공권력 대신 개인이 정의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 공개와 과잉 응징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취재에서 만난 스토킹 피해자는 탐정을 찾았고, 사기 피해자는 피해자 모임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았다. 모두 국가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구 노력'과 사적 제재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면서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수록 그 경계 역시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공권력 신뢰 왜 무너졌나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공권력 신뢰의 부분적 이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피해자가 이를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데서 괴리가 발생한다"며 "절차는 정당하지만 보호가 지연되거나 체감되지 않을 때 국민은 '법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국가기관보다 탐정이나 피해자 모임 같은 민간을 먼저 찾는 이유는 빠르고 구체적이며 즉각적으로 체감되는 대응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공권력이 속도와 밀착성에서 뒤처질수록 비공식 영역이 그 공백을 메우는 구조가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박 교수는 탐정이나 피해자 모임과 신상공개·온라인 응징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 공유와 증거 확보, 피해 회복을 돕는 활동은 공권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신상공개나 온라인 응징은 사실 확인 오류와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사적 제재"라며 "형벌권을 개인이 행사하는 순간 법치주의를 훼손하게 된다"고 말했다.
◆ '신고 이후'까지 책임지는 국가
전문가들은 결국 해법은 새로운 처벌 규정보다 국민이 실제로 보호받고 있다고 체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민 신뢰 회복의 핵심은 피해자 보호의 즉시성·통합성·지속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며 "신고 직후 위험 평가와 긴급 보호, 수사, 사후 회복 지원까지 끊김 없이 연결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피해자가 여러 기관을 전전하지 않도록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가정폭력·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와 같은 모델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공권력이 미처 닿지 못하는 영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며 "탐정 역시 이미 현실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방치하기보다 관리·감독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도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피어라' 스토킹피해자지원사업부 박진희 팀장은 "피해자들이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긴급한 구조보다 안전하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며 "긴급 보호가 끝난 뒤에도 주거 이전비와 생계비, 취업 지원 등 자립을 돕는 제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토킹 피해자는 안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후의 삶을 떠받쳐 줄 제도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피해자가 안전을 위해 생계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국가의 역할은 신고를 접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실제로 '국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체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