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절기감각
이주연 지음/ 샘터 펴냄
'입춘엔 봄나물, 입하엔 초당옥수수, 대한엔 삼치회.'
몇 해 전만 해도 생소하게 들렸을 이런 대화가 이제는 MZ세대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오간다. 제철 음식을 찾아 맛집을 방문하며, 계절마다 꼭 해야 할 일을 정해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SNS에는 '절기 챌린지'나 '제철 음식 달력'이 공유되기도 한다. 최근 구독자 104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찰스엔터'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을 추천한 뒤 책이 역주행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절기는 더 이상 고지식한 문화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가장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식 칼럼니스트 이주연의 신간 '절기 감각'은 꽤 시의적절한 책이다. 제목처럼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절기 자체가 아니다. 저자가 붙잡고 싶은 것은 점점 희미해지는 '계절을 느끼는 감각'이다. 입춘의 묵나물과 경칩의 봄나물, 망종의 신비복숭아, 입추의 무화과, 추분의 송이, 대한의 삼치회까지 24절기를 따라 제철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계절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절기를 "새로움의 감각"이라고 답한다. 절기를 핑계 삼아 사람을 만나고, 제철 식재료를 사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은 반복되는 하루에 작은 이벤트를 만든다. 오늘이 어떤 계절인지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책은 음식 이야기이면서도 결국 사람과 기억을 이야기한다. 벚꽃 아래에서 마셨던 술 한잔, 함께 만든 쑥 바게트, 무더운 여름을 견디게 해준 초당옥수수, 겨울바다를 통째로 품은 굴 한 점. 계절마다 먹었던 음식은 그때의 공기와 풍경,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고스란히 불러낸다. 독자 역시 책을 읽다 보면 자신만의 절기 음식이 하나둘 떠오른다. 여름이면 꼭 먹던 수박, 첫 김장김치와 삶은 수육, 겨울 호떡이나 붕어빵처럼 음식은 계절을 기억하는 가장 선명한 기록이 된다.
미식 칼럼니스트다운 묘사는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신비복숭아를 "여름의 첫 단물"이라 표현하고 무화과에서는 설익은 과일의 풋내와 잘 익은 과실의 향을 동시에 읽어낸다. 단순히 맛있다고 말하는 대신 식감과 향, 먹는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중간중간 실린 '미각 노트'에서는 묵나물 활용법과 감자전, 오이된장찌개, 파랫국, 굴계란빵 등 실제 레시피와 음식 이야기도 곁들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이 음식 이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지점은 기후위기다. 저자는 우리가 계절을 잃어가는 가장 큰 이유로 기후 변화를 꼽는다. 노지 오이는 시설재배로 옮겨가고 송이는 산불과 기온 상승으로 점점 귀해지고 있다. 겨울 과일이던 딸기는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제철'이라는 감각은 희미해졌다. 기후위기를 거창한 통계 대신 식탁 위의 변화로 설명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있다. 좋아하던 식재료 하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숫자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오늘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계절의 공기를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일에서 위안을 찾는다. 이 책은 "오늘은 절기니까 제철 과일 하나 사 먹자"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계절을 의식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결국 삶을 풍성하게 한다는 믿음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380쪽, 2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