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반도체 38년'; '파란만장' K원전 일대기; 류현진 파란만장 200승…"처럼, 최근 뉴스는 바람 잘 날 없지만 더러 극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물결 파, 물결 란, 일만 만, 길 장'으로 "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인다"라는 뜻이다. 삶이나 일의 진행에 우여곡절, 시련, 변화가 심할 때 쓴다. 한국과 일본에서 애용하는 사자성어이다.
'파(波)'는 바람으로 수면이 울퉁불퉁한 상태 즉 '잔물결과 큰 물결'을 다 일컫는다. '파'자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북송 때 왕안석이 『자설(字說)』에서 파(波) 자를 '물의 껍질(水之皮)'이라 풀이하자, 이에 소식이 "그럼 '활(滑)' 자는 '물의 뼈(水之骨)'가 되겠구먼!"하고,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파는 '음파・전파'처럼 에너지를 가진 물결인데, 뒤에 오는 글자 여하로 그 내용이 정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의 과학·기상학적 개념을 참고한다.
먼저, 바람 때문에 생기는 바다의 모든 물결을 '파랑(波浪)'이라 한다. 다음으로, 파랑 가운데 눈에 띄게 출렁이는 큰 물결을 '파도(波濤)'라 한다. 파도에는, 바람이 불고 있는 해역에서 생기는 '풍랑', 먼바다에서 발생한 파도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오는 '너울', 지진・화산 폭발 등으로 생기는 거대 물결인 '해일(쓰나미)'의 세 가지가 있다.
파란의 '란(瀾)'은 큰 물결 즉 파도이다. 그래서 가끔 어지러울 '란(亂)' 자로 바꿔, 파란만장(波亂萬丈)이라 쓰기도 한다.
만장의 '장(丈)'은 길이의 단위이다. 즉 중국 고대에는 성인 남자의 키를 기준 삼아 10척(尺)을 '1장(一丈)'으로 하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할 때의 '한 길'로, 어른 기준의 몸길이다. 중국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 길'은 약 2.25m(고대)~3.33m(현대) 사이에서 증감해왔다.
따라서 만장은 2만∼3만 미터로, 파도의 높이를 과장한 것이다. 중국의 허풍은 세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날 듯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삼천 척)"이나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새의 여정이 만 리)"를 보라. 이런 인문적 허세가 문학・예술의 규모를 부풀리고, 세상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낸다.
"운우분분작회명(雲雨紛紛作晦明: 구름 비 수시로 흐렸다 갰다가)…파란만장일부생(波瀾萬丈一浮生: 물결 만 길 속 한낱 덧없는 삶이여)" 『동문선』에 실린 이첨(李詹, 1345~1405)의 시 일부다. 파란만장에 휘둘리는 삶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1924년 1월 1일 자 《개벽》 제43호에 문일평은 <갑자(甲子) 이후 육십 년간의 조선>이라는 글을 실었다. "60년 전 갑자는 실로 조선사상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이같이 단기간에 대격변이 됨은 물론 외압적 관계도 지대하거니와 내발적 난인(亂因)도 진실로 많으니 외압적 관계의 대부분은 일・청・로(日淸露) 3국의 간섭이오, 내발적 난인의 대부분은 대원군, 명성황후 양파의 알력이다.
그런데 양파의 알력이 매양 3국에게 이용되어…파란만장…처절참절(悽絶慘絶)한 많은 희극 비극을 연출하였다." 아울러 1939년 9월 5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주식시장에 노도(怒濤), 대전(大戰) 경기로 파란만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 꼴은 비슷하다.
삶이란 바다 위엔 전쟁과 권력과 돈과 욕망의 파랑주의보로 가득. 파란만장이 없다면 삶이 너무 밋밋하여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탕이 될까 봐 그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