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누에의 희생을 기리다…상주 '잠령탑'

입력 2026-07-24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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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대구 수성4가에 처음 건립된 탑
누에 영혼 달래려, 매년 5월 풍잠기원제
일제시대와 광복 후 나라 주력 산업 '양잠'

양잠의 고장인 상주 함창읍에 있는 경북도 잠사곤충사업장 잠령탑. 잠령탑은 경북도 잠종장이 1962년 상주시 복룡동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했고, 2013년 상주시 함창읍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양잠의 고장인 상주 함창읍에 있는 경북도 잠사곤충사업장 잠령탑. 잠령탑은 경북도 잠종장이 1962년 상주시 복룡동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했고, 2013년 상주시 함창읍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북 상주. 쌀과 곶감, 명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흰 것' 가운데 명주의 뿌리를 찾아가면 누에를 기리는 특별한 산업유산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 회 허씨비단직물(7월 10일자 15면)에 이어 이번에는 1930년 세워진 상주 잠령탑(蠶靈塔)​을 찾았다.

함창명주테마파크 잠사곤충사업장 주차장 한편에는 거대한 돌탑 하나가 방문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대형 바위에는 '蠶靈(잠령)' 두 글자가 깊게 새겨져 있다. '누에 잠(蠶)', '영혼 령(靈)'이라는 뜻으로, 누에의 희생을 기리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상징물이다.

기단 위에 우뚝 선 비석과 그 위의 거대한 자연석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탑에서는 마치 누에의 넋을 위로하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대구에서 시작해 상주로 옮겨온 산업유산

비단 한 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누에고치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에가 뽑아낸 실로 옷을 짓고 전통 복식을 이어왔으며,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잠령탑은 이러한 누에의 희생에 감사하고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상징물이다.

현재 상주에 있는 잠령탑은 1930년 3월 대구 수성4가에 처음 건립됐다. 이후 1962년 상주시 복룡동으로 이전됐으며, 1986년 상석과 경계석을 보강했다. 2014년 4월 28일 현재의 함창명주테마파크로 다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탑의 규모는 기단부 높이 1.85m, 비신(머릿돌) 높이 1.7m로 전체 높이가 3.55m에 이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잠령탑은 1926년 서울 동대문 밖 용두동 선농단(농사의 신에게 올리는 국가 제사 제단) 경내에 세워진 '잠령공양탑'이다. 당시에도 누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됐다. 다만 일제강점기 전국에 세워진 잠령탑은 일본의 풍습이 유입된 사례로 평가된다.

2022년 5월 4일 열린 풍잠기원제에서 당시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이 초헌례를 올리고 있다. 경북도 제공
2022년 5월 4일 열린 풍잠기원제에서 당시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이 초헌례를 올리고 있다. 경북도 제공

◆누에 영혼 달래려, 매년 5월 풍잠기원제

잠령탑 자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풍잠기원제(豊蠶祈願祭)​는 우리 고유의 전통 제례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 풍잠기원제는 누에와 뽕나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누에의 신인 잠령에게 제를 올리며 희생된 누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이다.

경북도는 2022년 이곳 잠령탑 앞에서 전국 양잠 관계자들을 초청해 전통 제례의 원형을 살린 풍잠기원제를 재현했다. 매년 5월 초 제례를 올리는 것은 누에 사육 시기에 맞춰 한 해의 풍잠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경북은 전국 최대의 양잠 생산지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전국 누에 사육량의 79%, 건조누에와 생누에 생산량의 72.9%, 동충하초 생산량의 77%를 차지하고 있으며, 79종의 다양한 누에 유전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양잠의 고장인 상주 함창읍에 있는 경북도 잠사곤충사업장 잠령탑. 잠령탑은 경북도 잠종장이 1962년 상주시 복룡동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했고, 2013년 상주시 함창읍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양잠의 고장인 상주 함창읍에 있는 경북도 잠사곤충사업장 잠령탑. 잠령탑은 경북도 잠종장이 1962년 상주시 복룡동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했고, 2013년 상주시 함창읍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한때 국가 수출을 책임졌던 양잠산업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양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산업이었다. 그 중심에는 경북 상주가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의 생사 수입 규제를 계기로 산업이 위축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중국산 생사와 원단이 대량 유입되면서 국내 양잠산업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다.

21세기 들어 양잠농가는 크게 줄었지만, 함창명주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인들은 명주실을 물에 적셔 손베틀로 짜는 전통기법을 통해 결이 곱고 촘촘한 최고급 명주를 생산하고 있다.

함창 명주는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만큼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그 가치만큼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함창지역 50여 농가가 연간 12만 필 가량의 명주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으며, 연간 소득은 72억 원에 이른다.

◆명주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거듭나다
상주 잠령탑은 2013년 산업유산으로 지정됐다. 경북도와 상주시는 함창명주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잠령탑 인근에 명주박물관과 함창명주테마파크를 조성했다.

명주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과 체험전시실, 영상관 등이 마련돼 양잠과 명주의 역사, 전통 직조기술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김남일 경북관광공사 사장은 "잠령탑의 산업유산 지정은 옛 잠실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누에치는 마을과 함창명주테마파크를 연계해 미래세대가 양잠문화와 전통산업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교육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때 대한민국 수출을 이끌었던 양잠산업은 쇠퇴했지만, 잠령탑은 지금도 묵묵히 그 영광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누에의 희생 위에 피어난 명주의 역사와 장인들의 손길은 오늘도 상주 함창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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