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정부가 삼성·SK 등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언론과 관련 업계 등에서 일제히 의문을 쏟아내고 있다. 부지만 있을 뿐 물·전기·사람 인프라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뭘 하겠냐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업을 유치한 광주전남만 쾌재를 부를 뿐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정부의 발표였기 때문이다. 국가 미래 먹거리를 위한 대도약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취지도, 비수도권 지역 균형발전도 필요하지만, 화려한 숫자와 거창한 수사(修辭) 이면에 가려진 부실한 현실을 뜯어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과연 이 거대한 투자가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정치적 압박 없이, 기업들이 온전히 자율적이고 시장 논리에 기반해 내린 결정인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의 명운(命運)을 건 초정밀·첨단 제조 시설이다. 입지 선정의 기준은 오로지 안정적인 인프라와 생태계 구축 가능성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은 시작부터 기초 체력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생산의 필수 3대 요소인 '전력, 용수(用水), 인재'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담보된 것이 없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은 6.3GW, 하루 용수는 65만t에 달한다. 정부는 대책으로 다목적댐과 발전용 댐의 수계를 조정하고, 한빛원전 연장 가동 및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현실은 냉혹하다. 용수 자립도가 20%대에 불과한 호남 유역의 핵심 댐들은 이미 용수 계약률이 100%에 달해 여유 물량이 없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가뭄 시 영산강·섬진강 권역의 물 부족량은 수억t에 이를 것이라는 정부 자체 조사 결과도 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춤을 추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50%를 넘는 지역에서, 1초의 미세한 전력 흔들림으로도 수천억원의 피해를 보는 반도체 라인을 돌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장을 모르는 소리다. 간헐성을 메울 대규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나 송배전망 인프라 비용 분담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도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낙동강의 막대한 수량에다 원전과 대규모 전력망을 갖추고 있는 대구경북은 정부의 부지 검토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사람'과 '생태계'라는 장벽도 넘기 힘들다. 첨단산업일수록 우수 인재 유치와 정주(定住) 여건, 그리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과의 유기적인 생태계가 성패를 가른다. 정부는 지방에 수도권에 필적하는 '기업형 첨단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하지만, 이는 이미 수십조원의 세금을 쏟아붓고도 무늬만 남은 '혁신도시' 모델의 해묵은 재탕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기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지자체 간 갈등, 토지 보상, 초고압 송전선로 반대 민원에 가로막혀 첫 삽을 뜨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린 사실을 정부는 잊은 것인가? 이런 마당에, 맨땅이나 다름없는 서남권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없이 팹부터 짓겠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다.
글로벌 반도체·AI 전쟁은 기업 간의 싸움을 넘어 국가 총력전이다. 만약 정부의 인프라 지원이 말잔치에 그쳐 서남권 프로젝트가 실기(失期)하거나 표류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무리하게 입지를 선정한 정부와 정치권이 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