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초순수(超純水)

입력 2026-07-0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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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반도체 공장을 들여다보면 실리콘보다 물과 전기가 먼저 보인다. 반도체 공장은 칩 생산시설이자 물 생산 공장이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하나의 도시다. 반도체 용수는 증류수보다 훨씬 깨끗한 초순수(Ultra Pure Water)다. 순수한 증류수조차 반도체 산업에선 불순물 덩어리다. 반도체 공장 내부에서 생산하는 초순수는 역삼투압, 막여과, 이온교환, 자외선 살균 등 수십 단계의 정제를 거쳐 극미량 이온과 유기물, 용존 가스까지 완벽히 제거한 물이다.

사실 반도체 제조는 '씻어 내는 공정'에 가깝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고 화학물질을 입힌 뒤 씻는 과정, 즉 '증착(蒸着)-식각(蝕刻)-세정(洗淨)'을 수백 차례 반복한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불과한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서 불순물은 수율(收率)을 좌우한다.

반도체 공장은 한순간의 전압 강하(降下)도 허용하지 않는다. 순간정전이나 전압변동은 웨이퍼 대량 폐기를 뜻한다. 클린룸, 진공장비, 냉각설비, 초순수 생산시설은 멈출 수 없다. 반도체 기업들이 전기 요금보다 송전망과 안정성을 따지는 이유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거점의 필요 전력을 6.3GW, 용수를 하루 65만t으로 제시했다. 6.3GW는 울진 한울원전 8기 전체 설비용량 약 7.27GW에 육박하는 규모다. 원전 단지 하나가 쉼 없이 생산하는 전기를 반도체 클러스터가 소비하는 셈이다. 하루 65만t의 용수는 현재 삼성전자 국내 반도체 사업장 전체가 사용하는 물의 2배를 넘는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이 공장보다 인프라를 먼저 준비하는 이유다. 대만은 극심한 가뭄에 농업용수를 줄이고 물탱크 차량을 동원해 반도체 공장에 물을 댔다. 미국은 사막에 공장을 짓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용수 재이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 건설 자체는 통상 2~4년이면 가능하지만, 안정적 전력망과 광역 용수망 구축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첨단기술의 상징 반도체는 의외로 매우 기본적인 요소들 위에서 작동한다. 깨끗한 물, 끊기지 않는 전기, 안정적 송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서남권의 용수 공급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 확실히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한 한국수자원공사 윤석대 사장의 자신감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