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유치가 도시를 혁신한 6개의 장면

입력 2026-07-03 1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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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판교 테크노밸리 홈페이지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판교 테크노밸리 홈페이지

◆판교, 기업이 기업을 부른 도시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는 한국에서 산업 집적이 도시의 체질을 바꾼 대표 사례다. 수도권 남부의 입지, 정부와 경기도의 조성 전략, IT·게임·소프트웨어 기업의 이전과 창업, 청년 인재의 이동이 겹친 성과다. 판교의 힘은 건물 수가 아니라 기업이 기업을 부르고, 인재가 일자리를 따라 모이며, 다시 창업과 투자가 생기는 순환 구조에 있다.

2012년부터 IT 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며 '한국판 실리콘밸리'라는 별칭이 붙은 이 사례의 대성공에 정부는 아예 '판교형 테크노밸리'라는 이름을 내세워 대구를 비롯한 지방 대도시에 도심융합특구를 꾸리는 계획을 세웠다. 대구 수성알파시티가 AI·SW 집적지로 성장하려면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치의 목표는 기업 명단이 아니라, 다음 기업이 스스로 오게 만드는 생태계여야 한다.

◆선전, 특구가 기업을 낳은 도시

중국 선전은 유치와 제도 실험이 도시를 폭발적으로 바꾼 사례다. 1980년 중국의 첫 경제특구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선전은 당시 경제력이 크게 앞서 있던 홍콩과 가까운 입지, 개혁·개방 정책, 외국인 투자, 제조업 집적, 민간기업 성장에 힘입어 세계적 기술도시로 성장했다. 오늘날 선전은 화웨이, 텐센트, DJI, BYD 같은 기업의 거점이다.

이 사례를 단순히 특구 유치 자체가 도시를 살린 것으로 해석하면 틀렸다. 핵심은 특구 지정 이후 규제 실험, 금융·토지·노동시장 개혁, 제조 생태계, 수출 네트워크, 창업 문화가 함께 작동했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당시 중국 선전시 도심 야경. 선전시 제공
지난 2020년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당시 중국 선전시 도심 야경. 선전시 제공

◆대전, 연구로 혁신하는 도시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로 도시의 정체성을 바꿨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로 출발한 이곳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기업 연구소가 모여 한국 과학기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후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단순한 연구기관 집적지를 넘어 기술창업, 특허, 연구소기업, 첨단기술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혁신 클러스터로 진화했다.

연구가 기업으로 이어지고, 기업이 일자리로 이어지며, 일자리가 다시 도시의 정체성을 바꿀 때 유치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대구경북도 DGIST와 포스텍 등 대학과 구미·포항 제조 현장을 AI산업과 연결하려면 대전을 스승으로 모셔 청출어람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RTP, 대학·기업·정부 삼각편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TP)는 해외 대표적 연구개발 클러스터다. 1959년 조성된 이곳은 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라는 3곳 연구대학의 지리적 중심에 만들어졌다. 대학의 연구 역량, 주정부의 경제개발 전략, 기업의 연구소 입지가 결합해 지역 경제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경북의 대학·연구기관·산업 현장을 한 장의 전략지도 위에 올려놓으려면 참고할 사례다. AI산업 유치전에서 필요한 건 개별 기관의 이름값이 아니라, 대학·기업·정부(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삼각편대의 단단함이다.

지난해 9월 열린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지난해 9월 열린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부산, 축제를 산업의 언어로

부산은 1996년을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도시 브랜드로 키운 뒤, 영화의전당 건립과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이전,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 지정을 잇따라 이루며 영화도시의 이미지를 굳혔다. 처음엔 행사가 도시를 알렸고, 이후 시설·기관·인재·네트워크가 따라붙었다. 축제가 산업의 언어로 바뀐 대표 사례다.

문화시설과 문화행사는 유치와 개최 때 '반짝' 조명 받고 끝나면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만, 교육·관광·창작·산업과 연결되면 장기 브랜드가 된다. 유치는 단순히 행사를 따오는 일이 아니라, 도시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설계하는 일이다.

◆빌바오, 이미지를 경제 효과로

스페인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으로 도시 이미지를 바꾼 사례다. 1997년 문을 연 미술관은 쇠퇴한 산업도시 빌바오를 문화관광 도시로 세계에 각인시켰고, '빌바오 효과'라는 표현까지 만들었다. 매력적인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도시재생 전략과 관광 인프라, 지속적인 전시 운영이 잘 맞물려 가능한 성과였다.

대구경북에도 같은 미션이 던져진다. 다양한 문화예술이 경쟁력을 갖고 이어지며 관련 시설을 예술인과 주민들을 위한 인프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시키는 가운데, 도시 이미지를 바꾸는 수준까지 높이는 것. 이게 도시는 물론, 그 도시가 펼치는 산업에도 호감을 갖게 하는 브랜드로 구축되는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전경. 구겐하임미술관 인스타그램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전경. 구겐하임미술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