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행했던 거지맵을 떠올려보자. 1만원 이하 메뉴를 파는 식당들을 지도 위에 표시해 공유하던 서비스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처량할 것 같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유쾌했다. "여기 아직 7천원 김치찌개 판다", "가성비 성지 발견" 같은 후기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절약 노하우를 나눴다.
"'육아 거지맵'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육아를 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 아이 입장료에 부모 입장료, 거기에 밥값까지 더하면 세 가족 한 번 움직이는 데 10만원은 우습게 깨진다. 그렇다고 주말마다 집에만 있기엔 아이 체력은 넘쳐난다. 그래서 기자가 한번 만들어봤다. 치솟은 물가 속에서도 "아이에게 이것만큼은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마음으로 완성된, 생활밀착형 주말 생존 지도다.
◆ 오픈런만 잘하면 가성비 甲
비싼 키즈카페 대신 '국립·시립·구립'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예약 전쟁만 뚫으면 가성비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세금 낸 보람을 이런 데서 느낀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구시 산하 시설인 대구어린이세상은 이미 유명한 육아 코스다. 보호자와 아이 각각 4천원 정도. 요즘 키즈카페 가격 생각하면 부모들 사이에서는 거의 "공짜"라는 반응이다.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다. 1층은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게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고 볼풀장과 장난감 공간이 마련돼 있다. 2층에는 역할놀이 공간과 몸으로 탐험하는 시설도 있다.
대구시육아종합지원센터도 있다. 장난감도서관부터 체험 프로그램, 놀이실, 부모 교육까지 다양하게 운영하는데 무료다.문제는 예약이다. 한 달치 예약이 열리는 날이면 사실상 티켓팅 수준. "오픈 시간 전에 미리 로그인 해놔라", "새로고침 누를 준비하고 있어라" 같은 조언이 부모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하나의 팁이 있다면 비 오는 날을 노려보라. 갑자기 취소표가 꽤 풀린다.
각 구별 육아종합지원센터도 생각보다 알차다. 집 근처를 찾아보면 의외로 괜찮은 공간이 숨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이나 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마음껏 풀어놓고 책 읽고 장난감 만질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는 점이 좋다. 돈 안 쓰고 한 두시간 버티기(?) 가능한 곳들이다.
국립대구과학관은 부모들 사이에서 거의 '가성비 성지' 취급을 받는다. 공간이 넓고 각 전시관마다 볼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꿈나무과학관은 작은 키즈카페에 가까운 분위기다. 버튼 누르고, 만지고, 몸으로 뛰어다니며 과학을 체험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공룡 특별전이나 물놀이·흙놀이 체험 같은 시즌 콘텐츠도 자주 열린다. 시간만 잘 맞추면 사이언스 수업이나 로봇 공연도 볼 수 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로봇 주변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그 환호성에 부모들도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국립대구박물관 안에 어린이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 모르는 부모들이 많다. 여기도 예약은 필요하지만 시간대가 세분화돼 있어 생각보다 자리를 잡기 어렵진 않다. 역사와 문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놀이처럼 풀어낸 공간이라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 자연은 다 공짜
날씨 좋은 날엔 사실 최고의 가성비가 따로 있다. 산, 풀, 나무다. 돈 안 들고 체력 잘 빠지고,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신나한다. 부모들 사이 "자연이 최고"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구수목원이나 달성공원은 대표적인 무료 육아 코스다. 돗자리 하나 들고 가도 두세 시간은 금방 간다. 아이들은 돌멩이 줍고 개미 찾고 뛰어다니느라 정신없고, 부모들은 그늘 아래 잠시 앉아 숨을 돌린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비싼 장난감보다 나뭇가지 하나에 더 오래 웃기도 한다.
넓은 광장도 육아인들에겐 중요하다. 대구스타디움이나 강정보엔 주말이면 킥보드와 자전거 탄 아이들이 가득하다. 넘어져도 괜찮은 넓은 공간을 갖춘 것만으로 부모들 만족도가 높다. 체력 넘치는 아이를 한껏 방전시키기에도 좋다.
야외인데 실내 놀거리까지 있는 곳들은 특히 인기다. 화원유원지가 대표적이다. 유원지 분수 앞에는 여름만 되면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몰려 있고, 부모들은 옆에서 신발과 옷이 젖는 걸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나무로 만든 놀이터도 있다. 특히 바로 옆 화원역사문화체험관은 숨은 꿀코스다.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체험 공간이 있어 더위에 지친 아이를 잠시 데리고 들어가기 좋다. 부모들에게도 물론 피난처 같은 존재다.
경산 삼성현공원도 마찬가지다. 넓은 잔디와 그늘이 많아 돗자리 펴기 좋고, 산책로와 분수 놀이터도 잘 돼 있다. 실내 영아놀이터는 푹신한 매트 공간에 공놀이, 색칠놀이, 스티커놀이, 조립놀이까지 가능해 어린 아이 데리고 가기 좋다.
야외는 아니지만 달서구에 있는 달서목재문화관도 숨은 육아 코스다. 나무 향 가득한 공간 안에 유아 체험 공간인 '나무상상놀이터'가 운영되는데, 아이들이 나무 블록을 만지고 몸으로 뛰어놀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예약만 하면 무료로 이용 가능한 프로그램도 많다.
무엇보다 자연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다. 육퇴가 빨라진다는 것. 햇빛 실컷 보고 흙냄새 맡으며 꼬질꼬질해진 채 집에 돌아오면, 씻고 나서 노곤노곤해진 아이가 평소보다 훨씬 빨리 잠든다.
◆ 무료 혜택 야무지게!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부모들의 정보력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아이 무료입장이 가능해도 문제는 늘 부모 입장료다. "애는 공짜인데 어른 둘 값이 더 무섭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대표적인 게 생일 혜택 활용이다. 대구아쿠아리움은 생일자 무료입장 혜택이 있는데, 생일 당일만 되는 게 아니라 앞뒤 이틀까지 적용된다. 그래서 육아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공식도 돈다. "엄마는 생일이라 무료. 아기는 어려서 무료."
실제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이번 달 생일자 누구냐" "생일 혜택 되는 곳 리스트 공유해달라" 같은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카드 할인, 통신사 할인, 문화의 날 혜택까지 챙기다 보면 부모들은 어느새 작은 '가계부 전략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