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가수 진방남의 데뷔곡인 '불효자는 웁니다'(1940)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불멸의 사모곡(思母曲)이다.
진방남이 울먹이며 부른 이 노래의 탄생 과정에는 애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노래를 취입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마산역까지 따라 나와 아들을 배웅했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날, 조국에서 '모친 별세'라는 전보가 날아왔다. 노래는 통곡이 되었다. 진방남은 그 후 예명도 '반야월'(半夜月)로 바꿨다. 모자람이 많다는 의미였다.
반야월은 작사가로 더 유명하다. 우리 가요사상 숱한 명곡을 남겼다. '불효자는 웁니다'는 한두해 먼저 탄생한 가곡 '어머니 마음'의 대중가요적 변주였는지도 모른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1950년대 '어머니 날'의 제정과 함께 국민 가곡이 된 '어머니 마음'은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양주동의 사모곡이자, 우리나라 1세대 가곡 작곡가인 이흥렬의 사모곡이다. 어머니의 사랑만큼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모성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명언을 남긴 까닭이다.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 속담도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같고 바다같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시대를 초월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삶이 고달픈 시절일수록 '어머니'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김소월 시인의 '부모'는 어머니라는 대상과 자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기도 하다. 1969년 혼혈 가수 유주용이 부른 노랫말이기도 하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하지만 부모라는 자리의 무게감과 자식에 대한 가이없는 사랑을 느낄 즈음이면 부모는 떠나고 없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불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 그대로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해도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소월은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떠나야 하는 역설을 노래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이해가 부모의 상실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간극이 인간의 한계일까.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철지난 불효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되려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떼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