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코리안 허브, 방아

입력 2026-06-26 12:24: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방아
방아

'일립만배(一粒萬倍)' 였다. 한 알의 씨앗이 번져 꽃밭이 되었다.

이삿짐 부려놓은 집 마당 한편에 폭이 두어 뼘쯤 되는 조그마한 화단이 있었다. 정구지 몇 포기 사이로 생뚱맞은 식물 한 포기가 자랐다. 그 옆자리에 나의 화분을 줄지어 놓았다. 시골로 터를 옮기고 봄날이 되자 한 화분에서 낯선 싹이 돋았다. 씨앗 한 톨이 나를 따라와 키를 높이고 보랏빛 꽃을 피웠다.

다음 해 그 식물이 번져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무리 지어 핀 꽃에 벌이 날아들고, 벌보다 몸집이 큰 작은 새가 찾아왔다. 처음 마주하는 그 생물체를 벌새라 칭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붕붕이'였다. 붕붕이는 보랏빛 꽃이 피어야만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검색창에서 식물의 이름을 알아내었다. 흔히 '방아'라고 하는 약재 겸 식재료였다. '다른 풀의 향기를 밀어낼 만큼 향이 강하다'고 '배초향(排草香)', 식물 이파리가 콩잎과 닮았으며 짙은 향기가 난다고 하여 '곽향(藿香)'이라 하였다. 하지만 곽향은 아열대성 식물이라 한반도 기후에는 자라지 않는다. 선조들은 곽향의 효능과 형태가 유사한 배초향을 찾아 대용하였다. 이것이 '토곽향(土藿香)'으로 기록되어 정착하였다.

서양에 허브가 있고, 동남아에 고수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방아가 있다. 방아는 우리나라 허브(herb) 중 하나로 기름지고 비린 매운탕이나 생선찜에 곁들여져 식중독을 예방한다. 맛은 매우며 성질은 약간 따듯하다. 주로 소화기 계통(脾胃)에 효능을 보인다. 특히 여름철 상한 음식을 먹고 생기는 토사곽란(구토와 설사), 여름 감기와 더위 먹은 증상을 해소하는 데 쓰인다.

방아와 고등어
방아와 고등어

방아 향은 항균 작용을 하여 구강 내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데도 사용했다. 하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는 있기 마련이다. 딱히 부작용은 없으나 식재료에 열성이 있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과하게 먹지 않아야 한다.

기록에 보면 여름철 무더위에 가마를 타고 이동하다 멀미를 느낄 때, 갑작스러운 복통을 일으킬 때 배초향 달인 물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여름철 신선도가 떨어지기 쉬운 생선요리에 방아잎을 넣어 잡내를 잡고 식중독을 예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방아는 더운 계절에 유용한 약재 겸 식재료였다.

방아를 먹게 된 계기는 부산에 살던 올케언니 덕분이었다. 언니가 마련한 부침개에서 낯선 냄새가 났다. 처음 먹어본 식재료인데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남쪽 지방에서는 추어탕 끓일 때도 꼭 필요한 식재라고 했다. 그 맛이 생각나서 주변 시장을 둘러보아도 방아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랬던 방아가 우연히 내 곁으로 왔다.

방아는 우리 집 식탁의 필수 식재료가 되었다. 생선요리, 부침개, 찌개, 쌈을 먹을 때도 곁들인다. 방아는 향에 못지않은 달큼함이 있는데, 은근하게 끌리는 맛이다. 연한 잎은 쌈으로, 묵은 잎은 찌개에 넣는다. 꽃이 피면 우르르 몰려와 '앵앵 붕붕'거리는 벌과 붕붕이를 맞이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

몇 집에 방아 모종을 나눠주었다. 앞산 아랫동네의 지인 집 옥상에 방아가 번져 꽃밭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올해는 무성하던 방아가 시들해졌다. 주인의 게으른 손을 나무라듯 억센 잡초가 방아를 밀어내고 터를 차지했다. 말라깽이 같은 가지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파리가 시들하다. 가꾸지 않고 공으로 즐기려 했던 미안함에 물을 듬뿍 뿌려주었다.

후투티 한 마리 마당에 내려와 먹이 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른한 한낮을 그늘 속으로 데려간 팔월이는 뱃구레만 달싹거린다. 올케언니의 방아 부침개와 추어탕이 간절한 날, 아쉬운 대로 방아잎에 고등어구이를 싸서 먹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