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가 극성을 부리던 1977년 7월의 어느 오후, 대구 외곽의 한 나지막한 시골마을.학교도 방학에 들어가면 동호와 철수, 민호, 태형 등 동네 친구들은 마을 앞 공터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날 아이들이 즐길 놀이는 '말넘기'였다.특별한 도구도 필요 없었다. 두세 명이 허리를 굽혀 말을 만들고, 나머지 아이들이 달려와 그 등을 힘껏 뛰어넘는 단순한 놀이였다.신발을 신고 뛰기엔 거추장스럽고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이 더 좋았던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과 낡은 운동화를 벗어둔 채 맨발이었다.
"야, 이번엔 내가 말(馬) 할게! 높이 조절 없다, 알았지?"
민호가 먼저 씩씩하게 걸어 나가 허리를 굽혔다. 낡은 민소매 런닝구를 입은 민호의 단단한 등이 견고한 '말'로 변신했다. 그 뒤로 철수와 동호가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튼튼한 인간 징검다리를 완성했다.
손으로 풀밭을 단단히 집고 등을 굽힌 아이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군가의 등을 딛고 날아오르는 놀이, 그것은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그들만의 엄숙한 의식이었다.
"하나, 둘, 셋!","준비됐나? 간다아!"
저 멀리서 태형이의 벼락같은 외침이 공터를 갈랐다.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태형이가 힘껏 달려오더니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두 팔을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새 한 마리가 들판 위를 스쳐 가는 듯했다.태형이의 몸이 중력의 법칙 따위는 잠시 잊은 듯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태형이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닿은 소년이었다. 어설픈 안전장치 하나 없었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날아오르는 태형이의 얼굴에도, 밑에서 묵묵히 버텨주는 친구들의 등 뒤에도 터져 나오는 웃음과 거친 숨소리가 가득했다.옆에 있던 동호는 다음 차례를 준비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놀이가 계속될수록 말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다. 누가 더 멀리, 더 멋지게 뛰어넘는지 겨루기도 했다. 넘어지면 흙먼지를 털고 다시 일어났고, 무릎이 까져도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함께 뛰고 함께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가난했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1970년대 시골 들녘의 풍경이자, 우리 모두가 통과해 온 유년의 한 페이지였다.지금은 사라진 대구 인근 시골마을 공터의 풀 내음, 맨발로 땅을 디딜 때의 그 서늘하면서도 든든했던 감촉, 그리고 허공을 가르며 함께 지르던 아이들의 함성. 사진 속 주황색 옷을 입고 날아오르던 태형이도 이제 중년의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사진 한 장 속에서 동호와 철수, 민호, 태형이는 여전히 빛바랜 사진 속에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참으로 정겹고 역동적이었던 1977년 그해 여름날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