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체계와 자릿점》 출판기념회 개최
한국어의 수사 체계에 적합한 새로운 숫자 표기 방식을 제안한 《수사 체계와 자릿점》(퍼플출판사) 출판기념회가 지난 9일 오후 7시 진주문고 2층 여서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저자 박종석 박사는 책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어로 큰 수를 정확하고 쉽게 읽기 위해서는 현재의 세 자리 단위 자릿점 표기 대신 네 자리마다 자릿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에 따르면 한국어는 '만(萬)·억(億)·조(兆)' 단위로 수를 읽는 동아시아형 수사 체계를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숫자 표기는 영어 등 서유럽 언어권의 수사 체계에 맞추어 세 자리마다 자릿점을 찍고 있어 한국어 화자들이 큰 수를 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87,530,802,916,045'와 같은 숫자를 읽기 위해서는 현재 자릿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조' 단위를 확인해야 한다. 반면 한국어 수사 체계에 맞게 '87,5308,0291,6045'와 같이 네 자리마다 자릿점을 찍을 경우, '87조 5308억 291만 6045'로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동아시아인들은 세계적으로 수학 성취도가 매우 높은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큰 수를 읽는 데서는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는 수학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 체계와 숫자 표기 체계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역시 '만·억·조' 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동일한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하며, 동아시아 언어권에서는 네 자리마다 자릿점을 찍는 방식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행 한글맞춤법 제44항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한글맞춤법 제44항은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종석 박사는 "숫자로만 적을 적에는 네 자리마다 자릿점을 찍는다"라는 문구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예시로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을 '12억 3456만 7898'로 적듯이, 숫자로만 표기할 경우에는 '12,3456,7898'로 적는 것이 한국어 수사 체계에 가장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의 세 자리 단위 자릿점 표기를 국제표준이므로 따라야 한다는 인식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인도와 네팔 등 남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의 수사 체계에 맞는 독자적인 자릿점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박사는 이후 정부와 국립국어원 등 관계 기관에 한글맞춤법 개정을 건의해, 학계와 언론계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논의를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언론이 숫자를 표기할 때 한국어 수사 체계에 맞는 네 자리 단위 자릿점 사용을 적극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설득하는 데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박종석 박사는 "언어는 사용자들의 공감과 실천을 통해 발전한다"며 "한국어 화자들이 큰 수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수사 체계에 부합하는 숫자 표기 방식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것은 학문으로서 수학(數學)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일치시켜 나가는 운동(언문일치)이라도 강조했다.
한편, 《수사 체계와 자릿점》은 동아시아형·서유럽형·남아시아형 수사 체계를 비교 분석하고, 수사 체계와 숫자 표기 체계의 관계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검토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아시아 언어권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숫자 표기 체계를 제안하며 사회적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