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박용만 작 "열중"
1973년 겨울로 접어들던 어느 날, 대구 신천동의 좁은 뒷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지금처럼 장난감이 넘쳐나던 시절도 아니었고, 학원버스가 골목을 드나들던 시대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골목만 있으면 놀거리가 생겼고, 친구들만 모이면 하루해가 짧았다.
연탄 냄새가 골목에 스며들고, 집집마다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던 오후였다. 듬직한 가죽 재킷을 입은 철수와 줄무늬 내복 위에 외투를 겹쳐 입은 영호, 꽃 장화를 신은 태훈이와 코 흘리게 원모 등 동네친구들이 하나둘 골목 끝에 모여들었다. 철수가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딱지를 꺼내자, 또 영호가 침을 손가락 끝에 묻혀 딱지를 반듯하게 펴고 있었다.
"야, 이번엔 내 딱지다!"
"한 판 더 하자!"
아이들 목소리는 좁은 골목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시멘트 바닥 위에는 벌써 여러 장의 딱지가 놓여 있었다. 영화배우 얼굴이 그려진 것도 있었고, 만화 주인공이 인쇄된 딱지도 있었다.다 쓴 공책 겉표지를 접어 만든 딱지도 있었다.누렇게 닳은 딱지 모서리는 그동안의 승부를 말해주는 훈장 같았다.
코를 훌쩍이면서도 눈매만은 날카로웠던 아이들. 무릎이 해진 바지는 부끄러움이 아니었다.딱지치기는 단순한 놀이 같아도 아이들에겐 자존심 싸움이었다. 손목 스냅 하나에 승패가 갈렸다. 힘만 세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 닿는 각도와 바람까지 계산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상대 딱지를 노려봤다.
철수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손바닥으로 딱지를 내리쳤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의 딱지가 홱 뒤집혔다.
"우와!"
친구들이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딱지를 뒤집은 철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어깨를 으쓱거렸고, 진 영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이번 건 다시 하자. 손 미끄러졌다 아이가…"
그러면 옆에 있던 아이들이 심판이라도 된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이다, 아이다. 그건 진 기다."
"봐라, 딱 뒤집혔잖아."
저 바닥에 놓인 종이 딱지 한 장이 뭐라고, 아이들은 저토록 진지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딱지를 지켜내고 친구의 것을 쟁취하는 하나의 '생존 연습'이었다.해질 무렵까지 뛰놀다가도 어머니가 대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집으로 달려갔다.
"철수야! 밥 묵어라!"
"영호야! 연탄 갈아야 된다!"
아이들은 "예에!" 하고 대답은 했지만, 마지막 한 판을 더 하느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손등은 시커멓게 때가 묻고 코끝은 추위에 빨갛게 얼었지만,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골목엔 늘 온기가 있었다. 비싼 장난감 하나 없어도 아이들은 종이딱지 몇 장으로 하루를 웃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느냐보다 누가 더 재미있게 노느냐가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사진 속 딱지치기하던 아이들도 어느덧 환갑을 넘긴 중년의 어른이 되었다. 그 뒷골목은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세련된 카페가 생겼지만, 골목바닥에 울려 퍼지던 "딱!" 하는 그 소리만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선명하게 살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