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꺼~~ 어억, 좋타!" 65년 전통 예천 용궁 합동양조장

입력 2026-05-15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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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만 대표, 15세에 시작해 65년 동안 막걸리 장인
매월 3천병 가량 생산, 예천군과 인근 지역에 유통
한 때 6명의 주주가 있었던 탓에 '합동' 양조장

1951년 설립돼 70년 넘게 막걸리의 명맥을 이어온 예천 용궁 합동양조장은 1958년 준공된 적벽돌 건물로 더 유명하다. 현관 캐노피 위에 술 취한 막걸리 통 조형물이 올라앉아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건물은 근대 산업화의 역사와 향토 양조문화를 동시에 품은 살아있는 유산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1951년 설립돼 70년 넘게 막걸리의 명맥을 이어온 예천 용궁 합동양조장은 1958년 준공된 적벽돌 건물로 더 유명하다. 현관 캐노피 위에 술 취한 막걸리 통 조형물이 올라앉아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건물은 근대 산업화의 역사와 향토 양조문화를 동시에 품은 살아있는 유산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북 예천군 용궁면은 예전부터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들이 모여 있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아늑한 동네다. 그 중에 경북의 산업유산이자 향토 뿌리기업인 용궁 합동양조장이 읍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고풍스런 빨간 벽돌 건물에 '헤롱헤롱 막걸리병' 상징물이 현관 지붕 위에 올려져 있다.

100평 남짓한 건물과 마당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양조장 옆에 주인 권순만(78) 씨와 부인 조희정 씨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통적인 주조 방식(누룩 발효)으로 매월 3천병 정도 생산해, 거의 예천군과 인근 안동시와 문경시 등에서 소비된다. 막걸리 유효기간이 길지 않은데다, 유통마저 원활하지 않아 타 지역에선 맛보기가 쉽지 않다.

권순만(78) 용궁 합동양조장 대표가 생막걸리 병입에 앞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15세에 막걸리 배달로 양조업계에 첫발을 들인 그는 누룩 띄우기부터 담금·숙성·병입까지 전 과정을 홀로 도맡아 70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권순만(78) 용궁 합동양조장 대표가 생막걸리 병입에 앞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15세에 막걸리 배달로 양조업계에 첫발을 들인 그는 누룩 띄우기부터 담금·숙성·병입까지 전 과정을 홀로 도맡아 70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기냥 65년 이 일만 했어. 묻지 마!"

올해로 65년째 이 양조장 일을 하고 있는 권순만(78) 대표와의 20분 가량 진행한 짧은 인터뷰는 한편의 콩트였다. '올해 연세가 몇인지?'라고 첫 질문을 건네자, "묵을 만큼 묵었어. 원래 1946년생인데, 2년 늦게 호적을 올렸어. 만으로 80세"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어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라고 묻자, "중학교 입학하려 했는데, 15세부터 아버지가 막걸리 배달일을 시킨 후로 여지껏 이 일 하고 있지"라고 허공을 쳐다봤다.

또, 대뜸 '뭐 좀 남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추가 질문을 하자, "이놈 저놈 다 떼가고, 나한테 떨어지는 건 얼마 안 돼"라고 이번엔 땅을 내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이제 사모님과 여행도 좀 다니시라'라고 권유하자, "말라꼬~~~ 가면 뭐하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라고 단박에 거절하며, 질문하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권 대표는 그렇게 막걸리와 함께 65년 인생 고락(苦樂)을 함께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저 막걸리 제조하고 배달하는 일만 했다. 한 때 잘 나갈 때(1960~70년대)도 있었다. 직원들도 많았으며, 매출액도 상당했다. 그 덕택으로 아들 둘, 딸 셋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는 "아이고~~~, 언제 그래 세월이 흘렀노"라며 멍하니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부부의 호흡은 완벽했다. 아내는 누룩으로 술을 발효시키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비법으로 맛나고 깨끗한 막걸리 원액을 만들어내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기계식 제조공장에서는 권 대표의 우직한 장인의 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궁 생막걸리는 예천군 일대를 중심으로 인접 지역의 식당이나 마트 등으로 배달된다.

권순만 용궁합동양조장 대표가 발효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권 대표는
권순만 용궁합동양조장 대표가 발효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직접 누룩을 띄우는 양조장이 요즘 얼마나 있겠어요. 기술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죠"라고 자부한다. 아스파탐 대신 사카린을 감미료로 고집하는 것도 65년 현장 경험에서 우러난 소신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용궁 합동양조장 작업장 안에서 막걸리 발효가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용궁 합동양조장 작업장 안에서 막걸리 발효가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단 샘물'을 뜻하는 예천(醴泉)의 맑은 물과 금천·복계천·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수(水)의 고장 용궁면 물로 빚어낸 막걸리는 입 안 가득 향긋하고 깊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합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양조장에 왜 '합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했다. 누구나 주인이 여러 명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 알아보니, 주인이 한 때 여섯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각자 지분을 가지고, 양조장에서 나오는 수익을 분배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이 양조장의 주주인 셈이다.

이 양조장 경영은 수십년 동안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주주는 3~6명으로 자주 바뀌었는데, 현재는 권 씨 가족을 제외하고는 1명만이 6분의 1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권 대표는 수년 전 자신의 지분마저 두 아들에게 넘겼다.

깜짝 놀랄만한 우연은 또 있었다. 제5대 사장인 권 대표는 제3대 권성훈 사장(기자와 성·이름 동일) 아래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일을 했다. 아직 살아있는 권성훈 사장에 따르면 제1,2대 사장은 본인의 선대(할아버지, 아버지)인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 출신의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건강이 허락하실 때까지 이 양조장을 가동할 생각"이라며 "경북도와 예천군이 향후 이 양조장을 어떤 형태로 보존할 것이지 함께 고민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그는 건물 앞에 세워진 '헤롱헤롱 막걸리병' 상징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를 설치한 기관에서 철거해 줄 것도 당부했다.

송윤석 예천군청 투자유치팀장은 "용궁면에 위치한 합동양조장은 우리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숨쉬는 자랑거리이자 산업유산"이라며 "이 양조장을 향후 어떻게 예천 관광과 연결시킬 지,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용궁합동양조장 한켠에 빈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1960∼70년대 하루 400말씩 팔려나가던 전성기의 활기는 사라졌지만, 이 양조장은 고령화·인구 감소라는 시대의 파고 속에서도 전통 양조의 명맥을 놓지 않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용궁합동양조장 한켠에 빈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1960∼70년대 하루 400말씩 팔려나가던 전성기의 활기는 사라졌지만, 이 양조장은 고령화·인구 감소라는 시대의 파고 속에서도 전통 양조의 명맥을 놓지 않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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