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구 아카이브] 재개발 광풍… 도심 부흥과 주택 공급

입력 2026-04-24 1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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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칠곡지구 토지이용계획도. 계획 내부에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단독주택뿐만 아니라 유흥시설과 학교, 녹지 구간도 담겨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88년 칠곡지구 토지이용계획도. 계획 내부에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단독주택뿐만 아니라 유흥시설과 학교, 녹지 구간도 담겨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3부는 근대 산업의 태동부터 공업 단지 조성, 상업 중심지의 변화, 그리고 주거와 산업의 재배치까지 경제 활동의 공간적 변천사를 다룬다. (편집자 주)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다. 일제에 의해 시작된 토지구획 정리는 1960년대에 이르러 정리됐지만,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하며 또 한 번의 구획 정리가 필요해졌다. 공공시설이나 LH와 같은 공공주택이 들어설 부지도 필요해서다.

과거에는 기존 시가지를 개량하는 데 그쳤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개발되지 않았던 도시 외곽을 신도시로 개발해 도시 구역을 확장시키는 식으로 전환된다.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단독주택의 계획과 시공을 지원해주기 위해 주택공사광고나 시청사 내부에 안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 주택지를 개발하는 데 온 관심이 몰려있던 때였다.

대구주택공사에서 고급 주택을 분양한다는 광고를 매일신문에 게재한 모습. 매일신문 DB.
대구주택공사에서 고급 주택을 분양한다는 광고를 매일신문에 게재한 모습. 매일신문 DB.

지산동과 범물동, 칠곡과 달서 등 지금도 대구시의 주거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들이 이 당시 개발됐다. 균형있는 도시 개발과 저렴한 주택지 공급, 두 마리 토끼를 다잡기 위해 선택한 땅이었다.

태평과 덕산, 동인지구도 뒤이어 개발된다. 곳곳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소규모 저택이 포진돼, 제대로 된 주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서다. 노후하고 불량한 지역을 개발해 도시 기능을 회복하고, 고층 건물을 세워 한정된 토지에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자 했다. 이들을 포함해 1983년 지구별 계획에 포함된 행정동만 20곳이 넘었다.

이 당시 불량 도심을 정리하고 들어선 업무용 건물의 일부는 지금도 남아있다. 북성1지구를 정비한 후 1980년대에 들어선 대우빌딩이다. 지금은 대구스테이션센터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오랜기간 대구역 인근에서 판매와 위탁, 근린, 업무시설을 담당해왔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개발 열풍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새로운 개발 지구는 지정되지 않았고, 2000년에 이르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폐지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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