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회·법원·로스쿨 전문가의 시선…'2025 사법연감' 표8-표22 데이터 분석
법원행정처가 해마다 발간하는 '2025 사법연감'은 1,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법원 통계 자료집이다. 그 빼곡한 표와 수치 사이에 아무도 뒤집어 계산하지 않은 숫자가 조용히 묻혀 있었다.
민사 본안사건 변호사 선임 건수를 담은 '표22'다. 원고·피고·쌍방 선임 비율, 세 숫자를 더해 100에서 빼면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싸운 '완전 나홀로 소송' 비율이 나온다. 2020~2024년 합의·단독·소액사건 수치를 전수 역산했다. 한국 민사 법정의 민낯이 드러났다.
◆ 소액사건 100건 중 81건... 양쪽 다 본인 소송
2024년 처리된 민사 본안사건은 약 87만 건. 이 중 소가(訴價) 3,000만 원 이하 소액사건이 50만 7,80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역산 결과, 이 소액사건에서 원고·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율은 81.0%다. 100건 중 81건, 약 41만 1,000여 건에서 법정의 양쪽 당사자가 모두 법률 전문가 없이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더 들여다보면 구조는 더 극단적이다. 소액사건 중 소가(訴價) 1,000만 원 이하 사건만 38만 6,430건에 달한다. 원고·피고 중 한쪽만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가 16건, 양쪽 모두 선임한 경우는 고작 2건이다. 결국 원고 또는 피고 가운데 적어도 한쪽이 나홀로인 사건이 100건 중 98건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 5억 넘는 합의는 변호사, 3천만 이하 소액은 나홀로
사건 유형별 선임 구조는 정반대다. 소가 5억 원 초과 합의부 사건(2만 8,907건)에서는 쌍방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55.5%로 절반을 넘는다. 고액·복잡 사건일수록 변호사 선임이 당연하게 이뤄진다.
반면 소액사건의 쌍방 선임 비율은 2.3%. 합의사건과 비교하면 24분의 1 수준이다. 원고만 선임한 비율도 13.8%에 불과하다. 소가가 작을수록 법률 서비스 접근성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단독사건(소가 3,000만~5억 원, 26만 8,655건)에서 양쪽 나홀로 비율은 47.6%지만, 원고만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28.1%다. 원고에게 변호사가 있고 피고는 없는 '비대칭 소송'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박스기사
◆ 변호사회·법원·로스쿨…법조계 전문가 세 가지 시선
▷"AI만 믿고 법정 서면 기울어진 싸움… 민사도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해야"
-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AI 활용이 나홀로 소송을 늘리는 동시에 당사자의 권리 보호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는 신속성과 효율성 면에서 분명 도움이 되지만, 객관성과 신뢰성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며 "AI 환각이나 오류로 인한 허위 주장, 잘못된 판례 인용은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지식 없이 AI만 믿고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방과 맞붙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세 가지다. ▷민사사건 필수적 변호사 강제주의 단계적 도입 ▷소송구조제도 확대 ▷법률 부조제도 활성화다. 예상되는 반론도 직접 차단했다. "변호사 밥그릇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가장 취약한 당사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개혁의 수혜자는 변호사가 아니라 홀로 법정에 서야 하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AI·법원 협력으로 소송 문턱 낮추되 허위 주장·남소엔 엄중 대응해야"
-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AI와 사법부의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소송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당사자의 법률서비스 이용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법원은 민사소송의 원칙 안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가 더욱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AI 활용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낙관론에 선을 그었다. "AI 활용이 확산될수록 불필요한 소송 남발, 허위 주장·증거 제출 같은 부작용도 함께 커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위험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진단이다.
▷ "AI 환각이 법정을 오염시킨다… 리걸테크 이해관계 아닌 당사자 보호가 먼저"
- 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완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AI 활용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짚었다. 그는 "범용 AI를 법률 목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쓰면 환각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잘못된 법령을 AI가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당사자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법원에 낸다"고 말했다. "AI가 작성한 소장이 오류투성이여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가 더 강조한 것은 방향의 문제였다. "AI 활용 논의가 리걸테크 기업의 수익 모델이나 변호사 직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며 "소송 당사자의 실질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AI 리터러시 교육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