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대 중반에 여자아이들은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놀거리가 별로 없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소꿉장난'이나 '쎄쎄쎄' 같은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면, 좀 더 큰 아이들은 '고무줄놀이','실뜨기', '오자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 고무줄놀이는 여자아이들만의 전유물이였다.
당시 고무줄은 귀했던 시절이었다.어르신들이 속옷 허리끈으로도 즐겨 쓰던 검정 고무줄 토막을 버리지 않고 죄다 이어 붙여 놀이도구로 이용했다.
봄햇살이 골목에 내리쬐는 3월 어느 오후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5~6명의 아이들은 책보따리를 대문 안에 툭 던져 놓고 다시 골목으로 뛰쳐나왔다.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은 검정 고무줄을 골목길에 펼쳤다. 가위바위보로 양쪽 고무줄 끝을 잡는 술래를 정했다.첫 술래로 영희와 미숙이가 됐다.
고무줄놀이에는 늘 노래가 따랐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중략〉,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중략〉
다소 비장한 군가부터 동요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리듬에 맞춰 발을 꼬고 던지며 고무줄을 감았다 풀었다. 고무줄놀이가 무르익어면서 술래가 잡고 있는 고무줄은 발목 부위에서 시작해 무릎, 허벅지, 엉덩이, 허리, 겨드랑이, 어깨, 목, 귀, 머리, 머리 위 한 뼘 순으로 점점 올라갔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술래를 보는 영희와 미숙이도 함께 긴장했다. 누군가는 허공에 다리를 일자로 뻗고, 누군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렸다.한 번에 성공하면 박수가 터지고, 걸리면 웃음과 함께 순서를 넘겼다.발끝이 걸리면 그대로 탈락이다.
"아이고, 또 걸렸다!"
"발을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그런데 그 즐거운 고무줄놀이에 꼭 끼어드는 훼방꾼들이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서성거리던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대놓고 끼지는 못하면서도, 괜히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걸었다. "그게 뭐가 재밌노?" 그리고 슬그머니 다가가 면도칼로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쌩하니 달아나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여자아이들은 욕이나 해줄 뿐, 훼방놓는 꾸러기들의 심술은 좀처럼 막을 재간이 없었다.화가 난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따지다가도,늘상 있는 일이라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엔 다시 고무줄을 이어 해가 질때까지 놀았다.
장려상인 박정식 작 "고무줄놀이"는 어린 동생을 포대기로 둘러업은 채 팔짝팔짝 뛰며 놀던 그 시절 여자아이들의 이마에도 지금쯤은 굵은 주름이 패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