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부터 강원도 원주 뮤지엄산
30년 예술 세계 최대 규모로 조망
청도 작업실 흙 가져온 설치 작품 최초 공개
경북 청도 출신 '숯의 작가' 이배의 대규모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가 4월 7일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SAN)에서 개막한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숯'이라는 매체에 천착해 온 작가는 물질에 내재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의 원리를 일관되게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30여 년에 걸친 작업을 중심으로, 숯이라는 물질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 시간과 존재가 교차하는 관계망을 심층적으로 조망한다. 이를 통해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물질적 실험을 넘어, 존재와 세계를 사유하는 하나의 예술적 체계로 드러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회화부터 조각, 설치 미술, 영상 작품까지 작가의 모든 작업을 전례 없는 스케일과 깊이로 선보인다. 작품을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관람객이 공간을 이동하며 작품 사이를 걸을 때, 비로소 예술과 자연이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전시 제목인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단순한 시간의 지연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간, 어떤 변화가 이뤄지기 전, 생성의 작용'을 의미한다.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한 수동적인 기다림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능동적인 시간을 은유하는 것이다.
숯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기다림의 시간과 닮아 있다. 나무는 가마 속에서 불에 타며 형태를 잃지만,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식으며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한다. 이처럼 생성과 소멸, 그 사이 인고의 기다림을 통해 완성되는 변화의 시간은 이배 작업의 핵심적인 사유가 된다.
뮤지엄 본관에는 2023년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선보인 작업의 확장된 형태로, 높이 8m, 폭 5m, 무게 7t(톤)에 달하는 '불로부터(Issu du feu)'가 전시된다. 숯은 전통적으로 정화와 치유를 상징하며, 관람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자연의 순환을 의미한다.
청조갤러리 로비의 '붓질 Brushstroke' 16점은 전시장을 벗어나 자연의 빛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에 배치돼, 거대한 붓질로 이루어진 풍경 속을 직접 산책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계절과 날씨의 빛과 함께 작가의 수행적 행위가 결합된 작품은 마치 춤을 추듯 시시각각 변화함을 보여주게 된다.
청조갤러리 1, 2는 〈White〉&〈Black〉' 공간으로 펼쳐진다. 뮤지엄 산 관계자는 "이배의 작업에서 검정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빛을 모두 흡수해 수많은 색을 품고 있는 심연이며,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라며 "반대로 흰색은 여백과 빛, 그리고 열려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 두 색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동양적 사유에서 말하는 음양의 균형처럼 상호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청조갤러리 3 '〈Becoming〉'은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농부의 아들로 성장한 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한 공간이다. 9m 높이의 스크린에서는 논 위에서 직접 붓질하는 영상과 청도에서 옮겨온 흙으로 구현된 논 설치를 결합해 보여준다. 전시 기간 동안 실제로 성장하는 식물과 영상 속 행위는 땅·신체·시간의 순환적 관계를 드러내며, 작품을 고정된 대상이 아닌 생성의 과정으로 경험하게 한다.
야외공간에는 주변의 나무와 건축 지붕, 그리고 산세의 높이와 호응하도록 설계된 10m 규모의 브론즈 '붓질 Brushstroke' 6점이 배치돼, 자연과 건축, 조형이 하나의 확장된 풍경으로 결합된다. 관람객은 이 사이를 거닐며 계절과 빛의 변화, 그리고 산과 공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배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근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농부의 아들이라는 삶의 기반 위에서 예술과 노동,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사유해 왔다. 이러한 사유는 전시 전반에 걸쳐 생명과 순환,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는 구조로 심화되며 드러난다.
뮤지엄 산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작품의 물성과 건축, 자연이 서로 긴밀히 호응하며 관람객이 공간을 직접 경험하도록 기획됐다"며 "이를 통해 잠시 멈춰 서서 자신과 자연, 시간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이어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