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은 나를 더 성숙시켰고, 母 나눔 정신 계승
70년 열정적으로 살아온 삶, 인생 2막 출발
남들 한번 하기도 힘든 자리, 5군데 거쳐
"좌절은 나를 더 크게 키웠고, 봉사는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장익현 변호사의 정체성은 법조인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단체의 장을 누구보다 많이 맡았다. ▷대구변호사협회 회장 ▷국제로터리 3700지구 총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 ▷대구대 이사장 ▷독립운동정신 계승사업회 상임대표.
그는 삶의 원동력이자 자신을 키운 8할을 좌절과 나눔의 정신에서 찾았다. 성공을 위한 좌절(실패)은 한 개인의 통과의례이자 필수조건으로 여겼다. 경북대 법학 학사와 행정학 석사를 졸업한 그는 삼성과 한전 그리고 공군장교를 거쳐 첫째 딸이 여섯살 때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딸이 초등학교를 입학해, 아빠 직업란에 무직으로 써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봉사 DNA는 어머니의 피에서 옮겨왔다. 장 변호사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집에 찾아온 걸인(乞人,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에게까지 대청마루 앞 마당 평상에 정성스레 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봤다. "이 정도면 울 엄마는 나눔 여왕 아입니까?"(ㅎㅎㅎ)
◆첫째 딸 결혼식 후 "많이 아팠어요"
지난달 24일 인터뷰에서 만난 장 변호사는 많이 수척해 있었다. "어디 아픕니까?" 보자마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대답은 "몸과 마음이 다 아팠어요." 실제로 그랬다. 장이 막혀서 수술을 받고, 병원에 3주 가량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화제는 이내 올해 초 첫째 딸 결혼식으로 옮겨갔다. 범어대성당에서 열린 그 혼례미사를 다녀왔던 기자는 혼주석에 앉은 장 변호사가 상념에 잠겨있음을 직감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당시 정말 생각이 많았고,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70년(1957년생) 인생을 열심히 내달려온 그에게 하느님은 '쉼'을 허락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15년여 가까이 만나온 장 변호사는 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어려운 일들도 척척 잘 풀어가는 스타일이었다.
많이 아픈 후에 깨달음은 이랬다. "우리 딸이 사위와 교제하면서, 저한테도 얘기를 않고, 혼자 속앓이를 했어요. 아내는 그 사위를 아들이라는 여겼지만, 가슴이 많이 아립니다. 제가 병을 얻은 것도 이제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MB 정부 시절, 인재영입 될 뻔
장 변호사는 요즘 세태에 대해 "극단적으로 갈려 자기 얘기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 가치관의 혼란을 느낍니다. 거의 아노미(anomie, 사회적 혼란으로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 부재 상태) 상태"라고 개탄했다. 이어 "정치판이 앞장서서 더 이런 혼란을 가중시키니 속이 터집니다. 이런 세상은 처음"이라고 절규하다시피 했다.
변호사 업무를 계속하면서 지역에서 굵직굵직한 단체의 수장 자리를 다 맡은 거에 대해서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리로 여겨 기꺼이 나선 것"이라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어떤 자리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딤프 이사장 자리가 조심스러웠다. '비전문가가 와서 망쳐놨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라고 답했다.
정치 입문도 고려하다 바로 포기했다. MB 정부 시절 인재 영입 케이스로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진흙탕(정치판)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상황과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는 모습 등을 떠올리며 "정치는 나랑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70년 질풍노도기, 인생 2막 출발
병치레를 한 후 그는 지난 70년 인생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그 70년 동안 업적(성과)을 검증한다면, 그 누구도 '어떻게 이 많은 활동을 멋지게 해냈느냐?'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 변호사에게 큰 딸의 결혼식과 병치레는 인색 2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는 "아프고 나니, '이제 많이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좋아하는 테니스 코트에서 복귀해야 합니다. 살면서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남에게 피해준 적도 없습니다. 방향성은 옳았지만, 건강부터 챙겨야죠. Life is beautiful!"
사실 그는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잡기에도 능한 법조인이다. 딤프 이사장으로 노래를 잘 하기 위해서,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다. 뮤지컬 뿐 아니라 오페라, 클래식, 대중가요 등 다채로운 음악 뿐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또, 골프(보기 플레이어)와 당구(수지 200)도 즐기지만, 환갑 이후에는 주로 테니스에 빠져 있었다.
무료 법률상담도 주특기다. 1999년부터 대구가정법률상담소 '상담 변호사단' 소속으로 무료 법률상담을 했으며, 2015년부터는 대구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 또, 2019년 대구지방변호사회 저스티스봉사단장으로 취임해 3년 동안 헌신했다.
그는 인생 2막 계획과 버킷리스트에 대해 우리 사회에 작은 나눔이라도 할 수 있다면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어두운 곳이 많죠? 어머니가 그 시절 걸인에게 상을 차려주는 마음으로 제 남은 인생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