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니던 큰 길에서 벗어나 괜히 좁고 어둡고 후미진 길로 발을 옮기면, 평소보다 좀 느리게 발을 디디면, 늘 내려다보던 스마트폰 대신 지면의 생김새를 살피고 그러다가도 고개를 위로 올려 담장과 지붕 위를 탐색하면, 골목길에 감춰진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그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
맨 아래 글자까지 읽을 수 있다면, 시력 2.0이다. 과거 국정원(국가정보원)에서 만들어 골목길에 붙인 간첩 신고 홍보 시력검사표다. 지자체 홍보로 이름을 날렸던 충주맨(김선태) 같은 직원이 국정원에 있었던 걸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력이 좋다는 얘기인 시력검사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
곳곳에는
간첩과좌익
사범및국제범죄
사범이숨어있을지
모릅니다여러분의
신고정신이국가
안보를지켜줍니다
◆간첩 신고 상금 500만원→20억원
이 홍보물에 적힌 간첩 신고 상금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부터 간첩 신고 시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주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을 반영했다.
70년대엔 간첩 신고 500만원(이하 최고액 기준), 간첩선(간첩들이 타고 온 배나 잠수정 등) 신고 1000만원이었다.
80년대에는 간첩 신고 3000만원, 간첩선 신고 5000만원으로 10년 만에 5~6배 수준으로 높였다.
90년대에는 간첩 신고 1억원, 간첩선 신고 1억5000만원으로 3배가 됐다.
이어 2011년 간첩 신고 5억원, 간첩선 신고 7억5000만원으로 10여년 만에 5배로 상승했다. 정부는 신고 상금 인상 이유로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신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간첩 로또'라는 제목을 기사에 붙였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에 견줄만한 액수라는 표현이었다.
다시 5년 뒤였던 2016년 신고 상금 최고액이 20억원을 찍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간첩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의 활동이 수법이 날로 은밀화 및 지능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증액 이유를 밝혔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변치 않은 건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다. 통상 10년 간격으로 간첩 신고 상금이 상승했으니, 다시 올릴 때가 된 건 아닐까.
◆대구 신암동 무장간첩 사건을 아시나요?
이 밖에도 골목길에 가면 주소를 적어놓은 팻말 속 새마을운동 심볼에 곁들여진 '반공' 글자, 동네 골목마다 한집씩 있었던 '주민신고센타' 팻말로 반공의 시대를 지나온 대한민국 현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 대구 북성로 골목에서도 '숨은 간첩 찾아내고 자수 간첩 도와주자'는 대구경찰서장 명의 구호가 새겨진 오래된 벽면을 관람할 수 있다.
북한 간첩은 실제로 우리 현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1984년 9월 24일엔 대구 동구 신암동 백합미용실과 희민식당에서 신원미상의 북한 무장간첩 1명이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간첩은 독극물 앰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단순히 반공·멸공 궐기 대회에서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닌, 일상에서 내 가족이 언제 당할지 모를 공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