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반드시 설치되며 시민 대다수가 밟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쇳덩이가 있다. 인간과 지하세계의 연결고리이기도 한데, 지하상가·지하철역 등지와 달리 쉽게 가볼 수 없는 지하공간을 연결한다.
◆길바닥 터줏대감 맨홀
맨홀(Manhole)이다. 상·하수도관, 가스관, 통신선·전선 등을 매설한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를 평소엔 막고 있지만 유지·보수 시엔 여는 뚜껑이다. 보통 둥근 모양이지만, 네모난 모양도 있고, 드물게 삼각형 모양도 있다. 둥근 게 많은 이유는 통로(관로)가 둥글게 설계돼 있어서다.
아래에 매설된 게 뭔지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겉면에 표시돼 있는데, 설치 주체이거나 유지·보수 관련 기관·기업 이름정도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세상에서 사라진 명칭이 지면에 계속 노출돼 행인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한번 설치하면 장기간 교체할 필요가 없으니 명칭 변경을 이유로 맨홀을 바꿔 끼우는 건 예산 낭비다.
통신 관련 회사들이 마치 홍보의 일환이었던듯 경쟁적으로 자사 이름을 통신선 매설 맨홀에 새겼다. 두루넷·하나로통신(이상 현 SK브로드밴드), 데이콤·LG파워콤(이상 현 LG텔레콤) 등 옛 기업명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에서 우리나라 통신업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대구도시가스(구 대성에너지)와 '체'라는 줄임말로 표기된 체신부(우편·전보 담당 기관, 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의 뿌리. 우체국은 과기정통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 등의 사례도 있다.
이런 사례들과 반대로, 변치 않는(좀 더 정확히는 변치 않기를 바라는) 지역 명소를 홍보하는 맨홀 또는 맨홀 디자인의 조형물도 있다. 지면에 설치되는 이정표 내지는 랜드마크다. 대구 중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옆 동네인 수성구에 복원된 영남제일관 자리에 그 모습을 새겼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근대골목·동성로·김광석길 등지에 노후 맨홀 뚜껑을 교체하는 겸 계산성당·청라언덕 등 명소 디자인 맨홀을 설치한 바 있다.
◆추락·절도 뉴스 불청객
맨홀은 집중호우 때면 뉴스에 곧잘 오르는,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많은 비가 내려 물이 역류해 적어도 수십kg, 무거우면 100kg이 넘는 맨홀이 열리며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사람이 빠졌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이어진다.
쇠로 된 맨홀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저렴한 비용과 미관 개선을 이유로 콘크리트 맨홀이 꽤 설치됐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며 균열이 일어나고 파손되면서 보행자가 맨홀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도 잇따랐다. 그러자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관련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 직접 올라 서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사진이 마치 유행처럼 보도자료로 뿌려졌다.
맨홀은 범죄 뉴스에도 등장한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맨홀 자체를 훔쳐 고철로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맨홀을 열어 그 안에 있는 구리선을 절단해 훔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거나다. 이는 당시 철과 구리 등 금속류 원자재 가격이 꽤 상승했다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민생경제는 그만큼 팍팍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