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성수기 수익 대신… 어르신 여름을 바꾸는 손길

입력 2026-03-2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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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청소 재능기부 강병수 씨의 하루

강병수 씨가 에어컨 청소를 위해 방문한 어르신 댁에서 작업 중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병수 씨가 에어컨 청소를 위해 방문한 어르신 댁에서 작업 중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름을 앞둔 요즘, 전화가 불통되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컨 청소 업체들이다. 더위가 오기 전 미리 청소와 점검을 해두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고객의 집을 오가는 일정이 쉴 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병수(33) 씨의 하루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강 씨는 퇴근 후 저녁 시간이나 주말 등 틈나는 시간을 쪼개 무상으로 에어컨을 살피는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조금 덜 바쁠 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비수기 때 하면 제 몸은 편하겠지만, 어르신들께는 지금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더워지면 바로 쓰실 수 있죠"

◆어르신 댁 에어컨 무상 청소

지난 18일 찾은 한 어르신의 집. 에어컨 청소가 시작되자 어르신은 옆에서 지켜보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이번 여름도 그냥 참고 지나가야 하나 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에어컨을 분해하자 내부에는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장기간 청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냉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어르신 댁에서는 실내 흡연으로 에어컨 내부까지 담배 냄새가 깊게 밴 경우도 있었다. 분해하는 순간 벌레가 쏟아진 적도 있다"

강 씨는 이러한 상황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건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순 청소를 넘어, 어르신들의 생활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드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에어컨 청소 비용은 기종에 따라 7만~15만 원 수준이다. 누군가에겐 부담이 아닐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여름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비용이 되기도 한다. 이에 강 씨는 장비와 세척제, 이동 비용, 인건비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부담하며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강병수 씨가 어르신 댁에서 에어컨 분해 청소를 하고 있다.
강병수 씨가 어르신 댁에서 에어컨 분해 청소를 하고 있다.
강병수 씨가 어르신 댁에서 에어컨 분해 청소를 하고 있다.
강병수 씨가 어르신 댁에서 에어컨 분해 청소를 하고 있다.

◆ 청소보다 오래 남는건, 대화

청소가 한창인 시간, 어르신이 한쪽에 서서 연신 말을 건넨다. 걸레를 들고 따라다니며 도와주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그거 무거워요. 제가 할게요. 대신 재밌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강 씨가 웃으며 말하자, 어르신도 따라 웃는다. "아이고, 늙은 할매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다 있네."

강 씨는 청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대화'라고 말한다. 청소로 묵은 때를 닦아내듯, 어르신들의 마음속에 쌓인 외로움도 함께 덜어내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자식 이야기, 살아온 시간, 혼자 지내며 느끼는 외로움까지. 짧은 시간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어르신들께는 누군가 잠시라도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어르신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에어컨도 깨끗해졌지만, 사람을 만나서 더 좋았다." 그 말을 들으며 강 씨는 생각했다. "내가 청소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온 거구나." 그 순간, 이 활동을 계속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은 일을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 생겨났다고. "2017년부터 에어컨 청소와 보수 일을 해왔는데, 그때 대구 남구의 한 고아원에서 세탁기 청소를 해본 적이 있다. 이후 같은 해 에어컨 청소 재능기부를 시작으로, 수성구 고아원 등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며 "봉사라고 해서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을 매일매일 꾸준히 하듯 가능한 범위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병수 씨가 에어컨 청소를 위해 방문한 어르신 댁에서 작업 중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병수 씨가 에어컨 청소를 위해 방문한 어르신 댁에서 작업 중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한 영향력, 다양한 분야로 확장

강 씨의 재능기부는 주변으로도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다. 팀원들에게 이 같은 활동을 이야기했을 때, "취지가 좋다", "필요하면 언제든 함께하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실제로 한 번은 강 씨가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방문이 어려워지자, 팀원이 대신 어르신 댁을 찾아 2가구의 청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역시 별도의 보수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강 씨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기부를 더 넓은 형태로 확장해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들과 협업해, 보다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어가고 싶다." 현재 그는 도배, 주거 청소, 커튼·블라인드 설치, LED 조명 교체, 요리 등 여러 업종 종사자들과의 협업을 구상 중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특성을 고려해 외부 활동보다는 주거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집을 정비하고, 따뜻한 식사를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작은 재능에서 시작된 이 활동은 이제 '통합형 재능기부'로의 확장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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