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대가저수지 품은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두 채의 박공지붕, 빈자의 미학으로 설계
경남 고성군 대가면 대가연꽃테마공원. 굽이치는 대가저수지의 잔잔한 물결과 수변의 생태가 어우러진 이곳 한편에, 주변의 푸른 자연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로운 붉은빛의 철제 건물 두 채가 서 있다. 수면 위로 붉은 박공지붕의 실루엣이 비치는 풍경은 건축물이 자연을 온전히 품어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숲'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나무가 부족했던 공원 부지에 비교적 생장이 빠른 백합나무 100여그루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했다. 건물이 살아 변하면서 점차 이곳이 울창한 숲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판단이 담겼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를 두고 "제정구 선생의 집이 아니라 제정구 선생의 숲을 설계했다고 해도 된다"고 표현했다.
이곳은 평생을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하며 '빈민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故) 제정구 선생(1944~1999)을 기리는 공간,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이하 기념관)'다. 선생의 고향인 고성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일반적인 위인들의 기념관이 띠는 거대한 위용을 철저히 배제했다.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비워내는 건축적 문법을 통해 선생의 삶의 철학을 물리적 공간에 구현해 냈다.
◆ '빈민의 아버지'와 '빈자의 미학'의 만남
기념관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정구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1944년 고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을 시작으로 양평동, 묵동 등지에서 빈민 운동에 투신했다. 1986년 정일우(존 데일리) 신부와 함께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이후 제14·15대 국회의원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가 평생을 관통하며 강조한 가치는 "가짐 없는 큰 자유"였다.
이러한 선생의 철학을 공간으로 빚어낸 이는 '빈자의 미학'을 주창해 온 승효상 건축가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공간에서 발견한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건축의 핵심으로 삼아온 건축가에게, 제정구 선생의 삶은 곧 자신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이 공간은 한 인물을 우상화하는 거대한 덩어리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는 '커뮤니티센터'라는 이름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박공지붕과 '정자'가 있는 마당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적 특징은 공간의 분할이다. 웅장함을 과시하는 대신,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집의 형태인 박공지붕 건물 두 채를 나란히 배치했다. 선생이 천착했던 인간 내면의 존엄성을 기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건축이어야 한다고 여긴 결과다.
두 채의 건물 내부는 전시실, 교육실(강의실), 강당, 북카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건물을 분리함으로써 그 사이로 대가저수지의 풍경이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들어오게 되며, 이는 전보다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건축적 장치다.
건물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비워진 마당'과 '골목길'이 생겨났다. 이는 선생이 평생 호흡했던 판자촌의 골목길, 그리고 빈민들의 끈끈한 공동체적 연대를 은유한다. 특히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람들을 늘 환대했던 선생의 성품을 기려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를 배치해 모든 이들이 선생과 함께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 시간이 빚어내는 외장재
기념관 외관을 감싸고 있는 붉은 금속 재료는 승효상 건축가의 시그니처 재료이기도 한 '내후성 강판(코르텐강)'이다. 대기에 노출된 초기에는 붉은 녹이 슬지만, 약 5년의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형성된 녹이 치밀하고 단단한 산화 피막으로 변모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한다.
인위적인 마감이나 치장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이 재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했던 선생의 삶을 닮았다. 10년, 20년의 세월이 흐르며 표면이 짙은 암적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건축물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하며, 결국 이 암적색의 외벽은 주변 숲과 동화되어 선생을 기억하는 묵직한 장치로 남게 된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경남신문 박준영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