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의 두발 산책] 고쳐 쓰고, 고쳐 쓰고… 자동차 명장들의 동네

입력 2026-03-0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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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된 부품까지 되살려내는 정비 장인의 손길. 남산동 자동차부속 골목이
단종된 부품까지 되살려내는 정비 장인의 손길. 남산동 자동차부속 골목이 '자동차계의 종합병원'으로 불리는 이유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위-잉.' 나사가 돌아가다 빠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남산동 자동차부속 골목이다. 이 골목을 걸을 때는 자연스레 발 아래로 시선이 향한다. 잠시 방심하면 어디선가 굴러 나온 나사를 걷어차고 당황하기 십상이다.

명덕네거리에서 2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자동차 공업사가 늘어서 있다. 문을 연 업체만 50여 곳.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자동차 부품이다. 보닛을 활짝 연 차들이 갓길에 줄지어 서 있고, 코너마다 주인을 기다리는 타이어가 산처럼 쌓여 있다.

장·단거리를 오가며 쉽게 상하는 택시를 정비하기 위해 업체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골목이 형성됐다. 경일택시, 제일택시, 신한택시 등 수많은 택시 회사 차량이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대기했다. 지금은 대부분 부품 업체만 남았지만, 당시에는 폐차장과 세차장도 여럿 자리 잡고 있었다.

점차 고장 난 택시뿐 아니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 차량들도 골목을 찾기 시작했다. 수리와 부품 구매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서울이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부품까지 취급한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그야말로 자동차 '백화점'이었다.

골목의 주력 상품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단순 수리에서 출발해, 차량의 멋을 더하는 튜닝이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가 찾아왔다. 튜닝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이 시작되기 전까지, '차 좀 탄다'는 유행의 선도주자라면 꼭 한 번은 이 골목을 거쳤다.

보닛을 연 차량과 부품 상가가 늘어선 남산동 자동차부속 골목.
보닛을 연 차량과 부품 상가가 늘어선 남산동 자동차부속 골목. '위-잉' 나사가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40년 넘게 장인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시간은 흘러 지금의 골목이 됐다. 명장들에게 일을 배운 형제와 자녀, 후임들이 자리를 이어 지키고 있다. 차량 액세서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오광원(50)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99년 이 골목에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 사장 자녀들이 가업을 잇지 않게 되면서, 일을 배우던 오씨가 가게를 맡았다.

오씨는 "일을 처음 배울 땐 호되게 배웠다. 출근 시간은 8시, 퇴근 시간은 없이 일했다. 손님이 있으면 새벽 4시까지도 일했다"며 "그때는 그만큼 손님이 많아서 쉼 없이 일하며 배웠는데, 이제는 다 옛말이다"고 회상했다.

오씨를 비롯한 장인들은 여전히 그 솜씨를 뽐내고 있다. 죽어버린 전조등과 음향기기를 살려내고, 이제는 단종돼 구할 수 없는 부품을 뚝딱 고쳐낸다. 엔진오일처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은 물론, 광택을 잃어 거무죽죽해진 차량도 이 골목을 거치면 새 차처럼 반짝인다.

하지만 골목의 풍경은 예전과 같지 않다. 30년 넘게 광택 전문점을 운영해 온 장학민(54)씨는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종 장비와 정비를 한꺼번에 맡는 대형 '종합 모터스'가 대세다. 종합 모터스 하나가 들어선 자리에 예전에는 소규모 전문 업체 5~6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가게 숫자도 줄었고, 명장들도 골목을 떠났다.

장씨는 "한 업체에서 여러 부품을 함께 판매해 마진을 남기고, 손님에겐 편리함을 주는 구조다"며 "예전처럼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해서는 장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꼭 이 골목이 아니어도 차를 고칠 곳이 많아졌고, 인구도 줄다 보니 영업이 안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의 길거리 모터쇼인
국내 최초의 길거리 모터쇼인 '대구스트리트모터페스티벌'이 열린 모습. 매일신문 DB.

돌파구로 골목은 '스트리트 모터 페스티벌'을 꺼내 들었다. 지난해 14회를 맞으며 명실상부 대구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페스티벌이 열리면 골목은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차량이 오가던 도로 위에 휘황찬란한 스포츠카와 리무진이 줄지어 주차된다. 방문객들은 차량에 타보기도 하고, 차량을 둘러싼 튜닝 부품들도 구경해볼 수 있다.

축제가 끝나고 차들이 빠져나가면, 골목은 다시 쇠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화려한 변신은 잠시뿐이지만, 이 골목이 버텨온 시간은 축제보다 길다. 장인들의 고집스러운 손길은 이 골목을 조금 더 오래 살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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