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사회복지사의 하루
명절 연휴가 지나가면 집은 더 고요하다. 며칠간 오가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고, 식탁 위에 남은 반찬 몇 가지가 시간을 말해준다. 그 적막을 깨는 건 전화 한 통이다. "식사는 하셨어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따뜻한 목소리에 어르신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자녀가 멀리 살거나 왕래가 끊겼다면 고립감은 더 심해진다" 정연휘(45) 사회복지사는 명절 직후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이 북적이던 시간이 끝나면, 더 깊은 침묵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정 씨는 그 침묵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지난 27일, 그의 하루를 따라 가봤다.
◆ 은행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이른 아침, 재가복지센터 사무실에 출근한 정 씨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문 일정과 어르신 상태를 점검하고, 밤사이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요양보호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재가요양은 일반적으로 요양보호사가 정기적으로 어르신 댁을 방문해 식사·청소·신체활동 등을 지원하는 구조다.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며, 상태 변화를 점검하고 보호자 상담과 위기 대응을 맡는다. 사례를 총괄 관리하는 이른바 '사례 관리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정 씨의 업무는 행정 관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현장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서류로 보는 어르신과 직접 뵙는 어르신은 다르다. 작은 표정 변화 하나가 건강의 신호일 수 있고, 한마디 푸념이 외로움의 경고일 수 있다"
그가 '재가'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그는 은행원이었다. 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큰 건 '외로움'이었다. 그때부터 사람을 직접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이 쌓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결국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재가는 생활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이다. 냉장고 안 사정, 방 안의 온기, 약 봉투가 쌓인 서랍까지 모두 삶의 흔적인 것이다. 그래서 더 세심해야 하고,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들
"어르신이 아프시다고 하네요." 요양보호사의 전화를 받은 정 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르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병원에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만 한다는 내용이다. 정 씨는 곧장 차에 올라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손사래를 치는 어르신을 차분히 설득해 결국 병원으로 모셨다.
이처럼 재가 현장은 예고 없이 움직인다. 낙상 사고도 잦다. 실제 한 어르신은 이른 아침 소파에서 넘어졌다. 요양보호사의 연락을 받은 정 씨는 119에 신고하고 보호자에게 상황을 알렸다. 구급대 도착 전까지 의식을 확인하며 대응했고, 병원 이송과 입원 절차까지 챙겼다.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땐 의료기관과 동 행정복지센터와 협력 체계를 가동한다. 재가요양은 단순 방문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돌봄망의 한 축이다."
그래서 그는 '괜찮다'는 말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늘 괜찮다고만 하시던 분이 있었다. 어느 날 방문했는데 밥솥이 며칠째 그대로더라. 그날 이후 더 자주 찾아뵙게 됐다." 어르신에게 그는 사회복지사이지만, 때로는 딸이고 친구다. 손을 잡아드리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시간. 정 씨는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돌봄일지 모른다고 했다.
◆ 관계는 시간에서 자란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는 일만이 돌봄은 아니다. 때로는 문을 열지 않는 시간도 견뎌야 한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던 어르신도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말로 거리를 두시더라." 정 씨는 서두르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짧게 안부만 묻고 돌아섰다. "어느 날 제가 은행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분이 젊은 시절 통장 이야기를 하더라. 그날은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자꾸 오니까 이제는 기다려진다."
정 씨가 재작년 재가복지센터를 개소한 이유 역시 현장에서 비롯됐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니 조금 더 따뜻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행정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기관, 어르신과 요양보호사가 모두 존중받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집을 방문하는 일은 번거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어르신 대부분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익숙한 공간, 평생 살아온 자리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소망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그것이 어르신을 가장 배려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어르신이 '와줘서 고맙다'고 손을 꼭 잡아주실 때, 사실은 내가 더 배우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 순간들이 나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