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기자의 '그사람']'문소평이라 불리는 여걸' 문신자 원장

입력 2026-03-05 12:00:00 수정 2026-03-05 1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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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개 "38년 영덕에서 생산된 좀 오래된 제품"
인생 1막 교육자로서의 삶, 2막 '인맥 퀸'
63년 해로한 남편 꿈에 등장 "아직도 늦게 다니나?"

대구경북 여성계 원로인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은
대구경북 여성계 원로인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은 "열정을 잃지 않는 삶이 곧 젊음"이라며 활발한 사회활동의 비결과 지역 사회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올해 89세 나이에도 문 원장은 여전히 문화·봉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중국엔 등소평, 대구엔 문소평", "중국엔 공자, 한국엔 신자"

주요 일간지 칼럼에 소개될 정도로 '대구의 여걸(女傑)'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1938년 영덕 출생). 구순(九旬)을 바라보지만 아직 정정하다. 마음만은 늘 청춘이며, 삶의 열정은 MZ 세대를 능가한다.

지난달 22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북콘서트에서도 찬조 연사로 나서, "저는 1938년에 영덕에서 생산된 좀 오래된 제품, 문신자입니다."라는 가벼운 인사말로 시작부터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더불어 40년 동안 함께 해온 두터운 신뢰도 과시하면서, 주 부의장을 한껏 띄워줬다.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이 휴대폰 화면에 빼곡히 적힌 2월 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이 휴대폰 화면에 빼곡히 적힌 2월 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일제시대 갑부(문명기)의 딸, 교육자

문 원장의 인생에서 아버지 문명기라는 이름 석자는 빼놓을 수가 없다. 일제 시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부(富)를 쌓은 인물이다. 영덕 출신으로 1907년부터 제지업 광제회(廣濟會) 설립에 종사했으며, 1932년에는 광산업(금은 채굴)으로 조선의 최고 갑부라 명성을 떨쳤다. 아버지의 경영 능력과 수완 그리고 미래를 보는 혜안은 딸의 핏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방년(芳年, 여자 20세) 이후 인생 1막은 교육자로의 삶이었다. 대구를 비롯해 포항, 영천 등에서 현장 교사로 20년을 보냈다. 이후 교육 지도자의 삶이 펼쳐졌다. 1986년부터 대구 서부교육청 장학사로 출발해 1988년 대구시 교육청 장학관, 1995년 대구 신천초교 교장, 1999년 신암초교 교장을 끝으로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화려한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정년 퇴직 후 인생 2막 "인맥 퀸"

인생 2막은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출발한다. 경북과학대에서 출발해 대구가톨릭대 등에서 최고 경영자 과정으로 정·관·재계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대구시 체육회 이사, 민주평통 대구지역 부의장, 재구 영덕 향우회장 한국-우즈벡 교류협회 회장, 한류문화인진흥재단 이사장 등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문팬(문신자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였다.

지난해 미수연(米壽宴, 88세 생일) 기념 라운딩(해내다 CC)에서 인맥의 결정판을 보여줬다. 금배지만 8명이 왔으며, 단체장을 비롯해 160여 팀이 골프를 친 후에 뒤풀이를 했다. 생일 축하와 더불어 의미있는 나눔도 실천했다. 아들 셋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에 1억원을 기부약정하며, 아너 소사이어티 263호 회원이 됐다.

대구경북 여성계 원로인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은
대구경북 여성계 원로인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은 "열정을 잃지 않는 삶이 곧 젊음"이라며 활발한 사회활동의 비결과 지역 사회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올해 89세 나이에도 문 원장은 여전히 문화·봉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하루 4시간 수면이면 충분

문 원장은 교육자 퇴직 이후 26년을 하루 4시간만 자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주간매일 취재팀과의 인터뷰 역시 저녁식사를 겸해 늦은 밤까지 진행했다. 그 날도 에티오피아 대사와의 만남 등 주요한 일정을 다 소화한 후에 본인의 살아온 이력과 삶의 철학 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더 궁금한 것이 없냐?"고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 그 자체였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가슴 뛰고 소중한 날인가?" 그런 날들이 계속된 탓인지, '89세'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아마도 세월이 문 원장을 붙잡아 둘 틈이 없을 것 같았다. 인터뷰 도중 들려준 두 가지 인생교훈은 뇌리에 박혔다. 첫번째는 남의 말을 나쁘게 하지 마라. 두번째는 굴러다니는 낙엽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타인을 미워하기보다 본인 삶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다.

문 원장은 89세의 나이에도 골프를 주된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 문신자 원장 제공
문 원장은 89세의 나이에도 골프를 주된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 문신자 원장 제공

◆온 몸은 만신창이, But 골프 사랑

89세에 아픈 데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 원장 역시 온 몸이 파란만장하다. 위암 말기라 위를 다 덜어내고, 십이지장에 소화 계통을 바로 연결시켰다. 소식(小食)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양쪽 다리 모두 인공관절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으니, 골프도 치는 것 아니겠냐'는 문 원장의 정신력은 인체의 신비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골프는 인맥을 쌓기 위해 더없이 좋은 도구인 만큼, 아직도 놓지 않고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130m 안팎이지만 숏게임(어프로치, 퍼팅)에서 구력을 있는 만큼, 동반자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실력과 매너를 겸비하고 있다.

◆교육심리 전공자 '피그말리온 효과'

교육심리학 전공자인 그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를 늘 강조한다. 늘 "나는 된다", "할 수 있다", "잘 할거다" 등 긍정적인 자기 세뇌(다짐)을 반복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행동력을 보여주며 살아왔다.

또 다른 인생 철학이 담긴 문구도 늘 강조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구절을 좋아한다. 문 원장은 "제 에너지의 원천은 생각에 있으며, 낮잠을 자지 않는 것도 제 습관이며, 지역 사회와 나라를 위해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여태껏 쉼없이 달려왔다"고 털어놨다.

K2 공군발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 원장이 전투기 조정석에 앉았다. 문신자 원장 제공
K2 공군발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 원장이 전투기 조정석에 앉았다. 문신자 원장 제공

◆63년 해로한 우리 남편 "그리워"

문 원장은 같은 교육자(성광고 교장)로 63년을 함께 해로한 남편이 아직도 꿈에 나타나, 건강을 염려해 준다. "아직도 밤늦게 다니냐? 제발 좀 일찍 들어오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늘 바깥 일이 많은 아내를 걱정했기 때문.

남편은 살아생전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집안 일은 뒷전이다보니, 화가 날 때는 "허파 디비진다"('뒤집어진다'의 경상어 방언), "다 때려 치아라"('다 그만 접어라'의 경상도 속어)며 많이 투덜거렸다고 한다. 그는 "여보!! 고맙고, 미안하고, 그립다"는 말로 부부 간의 애틋한 정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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