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산업도시로 불렸던 배경에는 건실한 공업단지가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공업단지를 조성할 정도로 대구는 공장에 '진심'인 도시였다. 언제부터 거대한 규모의 공장이 자리 잡게 됐을까.
시계를 1930년대로 돌려보자. 조선총독부는 대구의 북부 지역을 '공업단지'로 꾸미고자 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그 계획을 연기했다. 당장 공장을 짓지는 못했지만, 1942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사업의 밑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인 1945년 조선이 해방되면서, 공업단지가 들어설 곳을 닦는 일은 점점 미뤄진다. 시간은 흘러 1950년대에 이른다.
제일모직, 지금의 삼성이 보유하던 공장이 '거대 공단'의 출발점이었다. 제일모직은 북구 침산동에 약 7만평의 공장 부지를 확보했다. 그 이후로 대한 방직, 조선 방직 등 유사 업종의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며 대단지가 형성된다. 이들은 근처 신천을 공업용수로 활용하며 덩치를 불렸다.
성서산업단지라고 불리는 제2공단의 역사 역시 길고 방대하다. 고시는 1965년 2월 이뤄졌지만, 본격적으로 계획이 추진된 건 1984년이었다. 총 사업은 5차로 나눠 진행됐는데, 마지막 사업이 마무리된 건 2012년이었다. 공업도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집념은 2010년대까지 이어진 셈이다.
일명 '3공단' 제3공업단지는 이름과 달리 제2공단보다 앞서 조성됐다. 1967년, 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경공업 제조업체를 도심 외곽으로 모으고자 기획됐다. 이를 통해 도심 지역으로 공해를 유입시키지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3공단은 역설되게도 도심부 중앙 쪽에 위치한다. 조성 당시에는 3공단이 위치한 노원동과 침산동이 도시 외곽이었지만, 도시가 확장하면서 중심부가 된 탓이다.
또 도심부로 지위가 바뀌면서, 지대가 상승해 기존 경공업 업체들은 설 곳을 잃게 됐다. 그 이후로 핵심 산업이 된 건 안경테, 로봇산업이다. 제일모직이 이전하는 등의 영향으로 제1공단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제3공단은 주력산업을 바꾸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