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읽남] 패닉 'Panic'

입력 2026-03-19 12:00:00 수정 2026-03-19 14: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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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1집
패닉 1집 'Panic'(1995) 앨범 커버
패닉 1집
패닉 1집 'Panic'(1995) 음반

이적과 김진표로 구성된 2인조 패닉이 1집을 발표한 1995년 10월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이 발매된 때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타이틀곡 '컴백홈'으로 KBS 음악프로그램 가요톱텐 1위를 4주 연속 기록해 골든컵을 차지하는 동안, 패닉의 타이틀곡 '아무도'는 제목마냥 아무도 모르는 곡으로 묻혔다.

◆반년 뒤 역주행 '달팽이'

그러다 반년이나 지난 1996년 4월 역주행으로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곡이 있다. '달팽이'다. 홍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이 곡은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현대인의 지친 일상을 느리고 작고 하찮은 몸집의 달팽이에 비유한 노랫말로 많은 공감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다만, 이런 감동을 주는 곡들만 가득할 줄 알고 음반을 사서 들어봤더니 놀라 당황해 하는 경우도 이어졌다. 일단 앨범 커버부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유행한 '엽기' 코드를 한 발 앞서 활용한듯한 두 멤버의 장난스러운 표정들로 채워져 있다.

못 뜬 타이틀곡 아무도는 이별의 후유증을 두통과 숙취에 비유한듯한 왁자지껄한 펑키리듬의 곡이다. 이런 스타일을 이적은 이후 김진표와 헤어져 버클리 음대 출신 기타리스트 한상원·피아니스트 정원영 등과 결성한 6인조 밴드 긱스에서 더욱 짙게 이어나간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는 김진표가 사회 비판 랩으로 채운 곡이다. 역시 이후 김진표가 JP라는 이름의 래퍼로 나서게 된 시발점이다.

패닉 멤버 이적과 김진표. 뮤직팜 제공
패닉 멤버 이적과 김진표. 뮤직팜 제공

◆소수자 차별 꼬집은 '왼손잡이'

달팽이 다음으로 인기를 누린 '왼손잡이'는 두 사람이 애초 세상에 던져 흔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잘 보여주는 곡이다.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오래된 차별 대상인 왼손잡이에 비유했다. 비슷한 시기였던 1995년 9월 신해철이 이끌던 록 밴드 넥스트가 동성동본 금혼법을 비판한 록발라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내놔 화제가 된 것과 닮은 사례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에서 가출 청소년 문제를 다뤄 실제 집으로 복귀시키기도 한 컴백홈, 원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혁명 내지는 체제전복 주장으로 표현한 가사가 담겼지만 사전심의 과정에서 공연윤리위원회가 지적하자 아예 가사 전체를 삭제하는 반발로 더욱 유명세를 탄 '시대유감' 등도 함께 묶어 90년대 중반을 지나던 한국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인재(人災)가 연이어졌고, 당시 신문과 TV에선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연일 뉴스로 다뤘다. 이에 대중가요가 즉각 반응한 것이다. 왼손잡이의 노랫말을 변주해 요약할 수 있다. "왼손잡이인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세상을 망치는 건 부실공사를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너희들이야."

왼손잡이로 대표되는 패닉의 사회 비판 성향은 1년 뒤 2집 '밑'(1996)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최성원. 매일신문DB
최성원. 매일신문DB

◆'제주도의 푸른 밤'과 페어링?

패닉의 1집은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인 들국화 멤버 최성원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온 이적을 알아보고 전체 프로듀서를 맡아 정성껏 매만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뜬 곡 달팽이는 이적이 작사·작곡 모두 담당하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7년 전 최성원이 들국화가 아닌 솔로로 처음 발표한 곡 제주도의 푸른 밤(1988)과 서사가 묘하게 연결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현실은 시간 순으로 인과를 형성하지만, 예술세계에선 시간을 뒤집어도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요즘 현대인들은 여전히 달팽이처럼 살기 때문에, 이상향은 여전히 별이 빛나는 푸른 밤 제주도를 닮은 낙원일지도.

패닉이 2026년 4월 16~19일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단독 콘서트
패닉이 2026년 4월 16~19일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단독 콘서트 '패닉 이즈 커밍'(PANIC IS COMING)을 갖는다. 패닉 멤버 이적과 김진표는 2005년 4집 앨범 발매 후 솔로 활동에 매진, 이번에 20년 만에 다시 한 무대에 선다. 뮤직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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