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문화전당 신춘기획전 '마에스트로'
권정순 민화 작가, 박세호 현대서예가
경주 APEC VIP라운지 걸렸던 민화 및
박 서예가의 첫 비디오아트 작품 전시
세계를 휩쓴 K-컬처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임을 실감하는 시대, 대덕문화전당에서 지난 23일 개막한 '마에스트로'는 전통예술의 계승과 현대적 해석의 균형을 이뤄나가는 두 거장에 주목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하당(荷堂) 권정순 민화 작가와 초람(艸嵐) 박세호 현대서예가의 작품이 1~3전시실 전관부터 새로 개관한 '블랙큐브' 전시실까지 꽉 채운 대규모 전시로, 전통예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민화는 과거 아닌 현재진행형 예술"
최근 서울의 대형 화랑인 갤러리현대에서 눈길을 끄는 새해 전시가 개막했다.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조선시대 민화와 궁중화들을 선보인 이 전시는 "한국 회화의 뿌리를 볼 수 있는 전시", "민화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주목 받았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 역시 상설기획전 '까치호랑이'를 진행 중이다. 조선 후기 유행했던, 까치와 호랑이를 주제로 한 민화·회화로 채운 전시다.
이렇듯 주요 미술 기관에서 민화를 재조명하는 흐름은 30여 년간 전통 민화의 길을 걸어온 권정순 작가에겐 더없이 반가운 일일 터.
그는 "동시대 미술 속에서 전통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며 "수많은 매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깊이 있는 상징성과 삶의 온기를 담은 예술은 더욱 소중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민화는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라 한국인의 미(美)의식과 세계관, 염원을 담은 문화적 자산이다.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진행형 예술이기에 오늘날 더욱 중요하게 조명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수리기능자를 역임하고 한국민화학회 부회장과 계명대 한국민화연구소 소장, 한국전통민화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작품은 경복궁 교태전과 주한미국대사관, 경북도청 등에서 소장 중이다.
국내는 물론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해외 민화 초청전시를 가졌고 지난해에는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린 크래프트쇼에 참여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한평생 꾸준히 민화를 연구해온 그의 업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계명대 한국민화연구소 주최로 여는 학술세미나는 벌써 17회를 맞았다.
그는 "해마다 축적되는 연구 성과와 토론의 시간이 민화학계 지형을 조금씩 확장해왔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민화가 더 이상 주변 장르가 아니라, 한국 회화사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대표작 십장생도, 책가도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 화조도를 옮긴 4폭 병풍 그림은 암수가 한 쌍을 이룬 앵무새를 중심으로, 화려한 색감이 돋보인다.
특히 화조도 4폭 병풍 양 옆에 걸린 화접도 2점은 지난해 경주 APEC 개최 당시 VIP라운지에 전시됐던 그림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장수의 상징인 나비, 부부 금슬의 상징인 한 쌍의 새,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 등 민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에는 길상의 의미가 담겨있어요. 궁중민화든 서민들의 민화든,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 삶의 염원이 고스란히 투영돼있죠."
또한 삼국지 병풍 그림은 마치 현대의 만화 같은 표현이 흥미롭게 느껴지고, 오로지 5가지 농도의 먹으로만 그린 흑백 병풍 그림은 명품 로고나 현대시 등 속속들이 숨겨진 현대적인 요소를 찾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과거의 지식과 전통 속에서 깨달음과 창조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민화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예술이 되길 바라며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민화와 현대서예라는 두 장르가 어떻게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한 공간에서 예술적 시너지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 예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대서예의 다채로운 변주 선보여"
박세호 현대서예가에게 이번 전시는 새로운 도전이다. '블랙큐브' 전시실 개관 기념으로 직접 만든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선보였기 때문. 기존에 촬영했던 자신의 인터뷰, 퍼포먼스 영상을 다시 매만지거나 AI로 제작한 10여 개 작품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그는 "서예라는 것이 단순히 방 안에 앉아 글씨를 쓰는 행위에 불과했는데, 나의 경우 퍼포먼스나 동적인 작품이 많다보니 제작 과정을 함께 보여주면 전시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평면으로 다 못 보여주는 작업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기록적인 의미도 있어 이번 전시에서 영상 작업을 함께 전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항아리와 접시 등 7점의 도자도 그의 작품이다. "발표는 한 적 없는 작품인데, 평소 해왔던 것들을 모아서 나의 여러 가지 작업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일필휘지의, 강렬하고 힘찬 필치가 특징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한국의 필법이 '초묵법'이기 때문.
초묵법은 먹에 물을 섞어 색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붓의 필압이나 운필법에 의해 먹이 다할 때까지 순간적으로 힘과 속도를 조절해 입체감을 나타내는 묵법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초묵법으로 그려진 대표적인 그림이다.
먹물과 기름을 섞거나, 유화스틱 등을 함께 사용한 작품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예술은 물론 모든 분야의 경계가 옅어지고 서로 소통하는 시대이기에, 그간 구분되던 재료의 결합을 시도했다"며 "동서양의 화법이 한지 위에 상생하는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서예가협회 이사장과 한국서예협회 청년서예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서예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2024년 파리올림픽 기념 개인전과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렸던 전시에 참여하면서, 세계가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서예계가 고령화됐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해외에서 서예를 비롯해 한국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앞으로 서예가 세계에서 독보적인 예술 분야로 각광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현대서예의 길을 개척해온 그는 이번 전시가 서예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재미 없고 고루하다고 여겨졌던 서예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의 미적인 기준도 과거에 비해 굉장히 다양해졌다"며 "서예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앞으로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했다.
한편 박 서예가는 예술의전당 대한민국 청년서예가를 비롯해 한국서예 차세대 미래작가, 수성아트피아 A아티스트 등에 선정된 바 있으며, 석재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주한중국대사관, 하와이 고송문화재단, 프랑스 주아니시청 등에 소장돼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