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시간이 오리니, 시간이 오리니/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피아노곡 '사랑의 꿈(Liebestraum)'으로 더 익숙한 이 작품은 원래 가곡으로 리스트가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리스트는 이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연인인 카롤리네에게 연주해주었다고 한다. 카롤리네는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3만 명이 넘는 일꾼을 거느린 대농장 소유주의 무남독녀로, 재물로는 남부러울 게 없었으나 귀족 칭호에 목말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되었다.
리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공작부인이었던 그녀는 그와 함께 사랑의 꿈을 이루고자 이혼절차에 돌입한다. 정확히는 혼인무효소송. 로마가톨릭교회는 혼인을 '성사(聖事)'로 보기에 '첫 결혼의 무효 선언'이 있어야 재혼할 수 있었다. 당시 혼인 무효 사유로 주장되었던 것은 '폭력과 위협'으로 카롤리네는 남편인 공작과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했던 일과 자신의 주임신부가 아닌 신부를 내세워 결혼을 성사시킨 일을 들어 혼인 무효를 주장했다.
교구청은 혼인 무효를 인정했으나 이러한 1심판결은 관할 문제로 추인이 필요했고, 카롤리네가 외국인인 리스트와 결혼함으로써 그녀가 가진 막대한 재산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에 반감을 품은 러시아 황제의 압력 등이 작용하면서 추인은 수차례 거절되었다. 자신의 부(富)가 걸림돌이 되자 그녀는 사실상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무려 12년에 걸친 소송을 끝내고 로마에 있는 성당에서 리스트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가톨릭 결혼식에서는 일정 기간 결혼에 관한 공지를 해야 하고 그 기간에는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이의를 제기한 이는 자신의 결혼을 앞둔 그녀의 딸이었다. 공작부인의 혼인 무효는 딸의 재산권까지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녀는 결국 소송을 포기했고, 그것으로 리스트의 인생에 결혼은 영영 없는 일이 되었다.
최근 그 빈도가 줄었다고는 하나 국내 취업을 위한 국제결혼은 사회 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다는 점에서 무효이다. 외국인의 국내 취업 이외에도 가족수당 수령, 해외 이주 등 혼인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편에 불과한 경우 그러한 가장혼인은 무효이다.
반면 IMF 구제금융 당시 강제집행을 면하고자 혼인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부부들의 경우 이러한 가장이혼은 유효하다. 혼인의 의사가 없는 혼인은 무효인데, 이혼의 의사가 없는 이혼은 무효가 아니다. 채무 회피, 세금 경감, 한부모 자녀 혜택 등 현실에서 가장이혼의 사유는 다양하다. 조금 결이 다른 얘기지만 혼인의사도 있고 혼인생활도 실질적으로 있는데 혼인신고만 하지 않은 경우가 사실혼이다.
최근 언론에서 '위장미혼'이라고 떠들썩했던 그것. 결혼식도 올리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데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를 법률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실혼이라고 한다. 대출 특례니 청약가점을 위한 경우도 있고 혼인연령이 늦어지면서 각자 보유한 집 한 채가 합쳐질 경우 당장 감당해야 할 세금을 피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혼인신고만 하지 않은 사실혼의 경우 생전의 재산분할청구는 가능하지만, 법적 배우자가 아니므로 상속권이 없다. 가장혼인이 무효인 것은 혼인을 통해 주어지는 상속권 등 법적 권리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 법적 보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경우라면 법이 나서서 막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가장이혼은 유효하다. 국제결혼으로 입국 후 공항에서 사라진 며느리가 아들 사망 소식을 듣고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할 때 혼인이 무효가 되지 않으면 부모는 생면부지의 며느리에게 아들의 목숨값이기도 할 상속재산 3/5을 빼앗기고 만다.
14년을 연인으로, 그중 12년의 지난한 혼인무효소송을 함께 했고 모든 재산을 사실상 포기한 그녀와 행복한 결혼식을 꿈꾸었던 50세의 리스트. 딸을 위한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그는 사제가 되었고, 그녀는 수녀원에 거처를 마련했다. 아마도 이들은 그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