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리메이크 명작
가수왕, 가왕, 가황, 몇대 천왕 등의 수식이 시대마다 노래 잘 하는 이들에게 붙는다. 그런데 '가객'이라는 수식은 웬만해선 이 사람한테만 달린다. 김광석이다.
올해(2026년)는 그의 30주기이다. 그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이 연달아 초연 무대를 펼친 2012~2013년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연초부터 추모 공연이 열리고 헌정 앨범이 발매되는 등 다시 김광석 바람을 부를 모양새다.
그가 떠난지는 30년이 흘렀고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 참여로 데뷔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시간 희미해지지 않고 계속 다시 불리어지는 저력은 같은 표현이 제목인 앨범 '다시 부르기' 1(1993)과 2(1995)에서 나왔다.
◆10년차의 거듭남, 다시 부르기
김광석은 1980년대 노찾사와 밴드 동물원 활동을 거쳐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 건 솔로 활동을 펼쳤다. 1집(1989)이 '기다려줘'와 '너에게'를 띄웠고, 2집(1991)에선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큰 사랑을 받았으며, 3집(1992)은 좀 더 자기 색깔을 찾은듯 했으나 전작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즉, 노래 참 잘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가요계 여느 장르에 늘상 몇명은 있는 그런 재능 있는 가수 중 하나에 머물렀다.
이후 김광석은 한 달 간 서울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나섰다. 자신의 음악 인생 10년을 중간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는데, 이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잘 소화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를 잘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내가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마치 연사나 이야기꾼이 되는 것.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들은 물론 평소 애창한 곡들도 공연 리스트에 올렸다. 이를 좋게 지켜본 지인들의 제안으로 공연 곡들을 수록한 다시 부르기 1이 발매됐다.
자기 노래 및 친정인 셈인 노찾사·동물원의 곡들이 앨범 대부분을 채운 가운데 1번 트랙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김현성이 1986년 발표한 곡을 들국화의 전인권이 1990년 리메이크한 걸 김광석이 1993년 다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 원곡으로 알았고 또한 지금도 그렇게 아는 경우가 적잖다. 그리 착각하게 되는 건 김광석의 놀라운 소화력 때문일 것이다.
◆힘껏 다시 불러 영원한 가객으로
김광석은 다시 2년 뒤 내놓은 다시 부르기 2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같은 사례를 늘렸다.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선배 포크·블루스 뮤지션들의 곡을 다시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를 양병집이 역(逆, 1974)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한 걸 김광석이 새 제목을 지어 열창한 사례다. 노랫말을 보면 땅꾼이 독사에게 잡혀가는 등 사회가 뒤집힌 세태를 풍자했는데, 앨범 표지를 신문 1면 스타일로 패러디한 것과 함께 김광석이 마치 조선시대 때 풍자 시인 김삿갓으로 변모한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원곡 가사 그대로 다시 불렀을 뿐인데 좀 더 울컥하게 만든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이라는 부분을 녹음할 땐 실제 대구 방천시장 전파상 막내아들로 태어났던 김광석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소주 한 잔 마신 후 녹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부르기 전에 깊숙이 공감(즉, 소화)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물이 다시 뭇사람들로부터 눈물을 부른다.
다시 부르기 1·2는 어떤날 출신 조동익의 감각적인 편곡과 함춘호·손진태 등 실력파 세션진이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광석은 평소 즐겨 부르던 음악계 선배·동료들의 곡을 정성을 다해 앨범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곡들이 마치 보답인듯 오랜 시간 조명처럼 김광석을 비추고 있다. 김광석이 일취월장 행보를 보인 두 리메이크 앨범 발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등 명곡들로 가득한 최고작 4집(1994)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닐 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