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신년회 날, 키쿠오는 야쿠자 두목인 아버지와 그의 수하들 앞에서 가부키 극을 선보인다. 손님으로 참석한 가부키 명문가의 당주인 한지로는 키쿠오가 타고난 온나가타(女形)임을 단번에 알아본다. 일본 에도 시대에는 풍기 문란을 이유로 남자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래서 가부키 배우(俳優)는 남성뿐이며 여성 역할도 남성이 연기해야 하는데, 이를 '온나가타'라고 부른다.
가부키 공연이 끝나자마자 반대파의 습격으로 키쿠오의 아버지는 아들의 눈앞에서 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똑똑히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얀 눈 위에 붉은 피를 적시며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직 죽음만이 진실인 삶이라는 무대에서 쓰러진 배우처럼 보인다. 이 순간 키쿠오는 쓰러진 아버지가 아니라 허공을 바라본다. 기댈 곳 없는 자신이 의지해야 할 그 무엇을 찾는 듯.
<국보>는 가부키 세계에 발을 들인 키쿠오가 혈통과 재능이라는 숙명 사이에서 좌절하고 극복하면서, 결국 일본 제일의 가부키 배우가 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잃는다. 특히 그의 곁을 지키고자 했던 연인들이 모두 그를 떠난다. 지난한 궁핍을 함께 견디면서도 키쿠오가 자신들을 바라봐주길 원했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들을 향하지 않는다. 키쿠오의 시선은 예술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경치만을 갈망한다.
가부키는 그 표현 방식이 지극히 오묘하고 상징적이다. 그리고 그 양식에 있어 배우의 미세한 움직임과 미려한 발성법이 엄격히 규격화된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된다. 가부키 극의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연기자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될 수 없기에, 뼈가 휠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에 흐르는 극도로 양식화된 절제미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에 묘사된 완벽을 향한 집념을 영화는 더욱더 압도적인 형식미와 디테일로 풀어낸다.
현세대의 배우가 전통 무용의 몸짓을 통해 보여주는 정교한 퍼포먼스와 복잡한 내면 표현은 가히 기적적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무용은 단순한 신체의 움직임이 아니다. 섬세한 흔들림이나 특정 자세마다 의미가 있고 드라마와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클로즈업은 땀으로 무너지는 화장의 한 줄기까지도 포착하며 등장인물이 뿜는 감정을 화면 위에 그려낸다. 그리고 빛을 다루는 솜씨와 더불어 무대 위의 공기까지 담아내는 음향 솜씨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침묵의 소리가 주는 감동에 마비되어 몇 번이고 숨을 죽이는 순간이 있다.
매우 거대한 재능을 지닌 인간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들은 예술에 무게를 두고 삶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 풍경이 지닌 기괴한 아름다움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동료가 무대 밖을 향해 "뭔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지만 키쿠오는 다르다. 그는 보이는 것을 찾지 않는다. 키쿠오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다. 이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호화로운 무대 위에서 넋을 잃은 듯 춤을 마무리한 키쿠오가 "참 아름답구나"라며 읊조리던 독백이 진실인지는 오로지 관찰자의 해석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