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의 기원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 신호
동·서독 정상간 통일 악수, 남북 정상간 화해 모드
몇몇 괴팍한 정상들, 악수 통해 상대 제압하려 해
악수는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인사 방식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예절을 넘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신뢰와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근·현대에는 신뢰와 협력의 메시지를 담는 상징적 행위로 인식된다. 특히 정치와 외교 현장에서는 악수 장면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갈등의 종식, 화해의 시작, 국제 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록돼 왔다. 역사 속에서는 한 번의 악수가 전쟁과 대립을 평화와 협상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악수의 기원은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만날 때 상대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잡는 행위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표시로 해석됐다. 곧,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알리는 비언어적 신호였다.
◆근현대사의 '세기의 악수들'
#1. '美 닉슨과 中 주은래' 적과의 화해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방중은 '전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 불리며, 현대사 최고의 반전 드라마로 기억된다.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과 중국이 20년 넘게 이어오던 적대 관계를 깨고 손을 맞잡다. 닉슨은 '악수'를 소통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1954년 제네바 회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주은래의 악수를 거부했던 사건은 중국에 큰 굴욕이었다. 이를 의식한 닉슨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주은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2. 동·서독 정상 악수 '핏줄의 재결합'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독과 서독 지도자가 나눈 악수는 '분단의 시대가 끝나고 통일 독일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이정표였다. 이후 통일 독일은 단일 민족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유럽 강대국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와 동독의 신임 총리 한스 모드로(Hans Modrow)의 만남은 이웃나라 정상 간의 회동이 아니라 한 민족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거대한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두 정상의 악수는 '핏줄의 재결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 美 트럼프-北 김정은 첫 만남 '13초'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파격적인 형식과 장소 덕분에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두 정상은 성조기와 인공기가 교차 배치된 복도에서 걸어 나와, 정중앙에서 만나 약 13초 동안 악수를 했다.
트럼프는 상대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도권을 쥐려 했고, 김정은도 이에 맞서 굳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이는 "우리는 대등한 대화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시각적으로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4. '南-北 만남' DJ와 김정일 두손 맞잡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한반도 분단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55년 분단의 벽을 허물고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자, 전 국민은 '공존과 화해', '한반도 냉전의 해체'를 기대했다.
이후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 회동에서도 남북 정상간 악수는 양국간 화해 물결의 알리는 장면으로 각인됐다.
2000년대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중 3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실질적 핵폐기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악수가 외교적 '신호'로서의 의미는 컸지만, 실질적 정책 변화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정상 간의 악수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몇몇 괴팍한 정상들은 악수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국가간 외교에서는 따뜻한 손길로 신뢰의 물꼬를 트는 반가움을 담아 서로 손을 내민다. 단순한 인사를 넘어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는 악수, 정상들의 맞잡은 두 손에 세계의 평화와 미래가 달려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