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달라진 설 명절 풍속도 … AI 복원한 조상들 새해 덕담

입력 2026-02-12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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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안 모이고, 차리지 않는 설

AI로 복원한 조상들의 영상을 보며 가족들이 명절 차례를 지내고 있다.AI로 생성한 이미지
AI로 복원한 조상들의 영상을 보며 가족들이 명절 차례를 지내고 있다.AI로 생성한 이미지

예전 명절 차례상에는 가족들이 모여 돌아가신 조상들의 이름과 신위를 적어 모시는 지방(紙榜)이나 영정사진 앞에서 절을 올렸다.최근에는 AI 복원 기술로 아이들은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생한 목소리로 새해 덕담을 듣는 등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달라진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론 전통적인 차례를 지내진 않지만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외식을 하거나 긴 연휴동안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다.

지난 1월 스레드(Threads) 이용 유저가 사진 수정 요청을 올린 모습. 요청을 본 누리꾼들은 할머니가 한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해줬다. 스레드 갈무리.
지난 1월 스레드(Threads) 이용 유저가 사진 수정 요청을 올린 모습. 요청을 본 누리꾼들은 할머니가 한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해줬다. 스레드 갈무리.

◆ 흐릿한 사진 이제 그만… 활짝 웃는 모습 복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이번 설에는 납골당에 사진을 넣어드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차례상에 오르는 사진도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있다. SNS에 부모님 사진과 함께 사연을 올리면, 이를 본 누리꾼들이 사진 복원에 나서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마스크에 가려 턱선이 보이지 않고, 편안한 일상복 차림이던 아버지의 사진은 어느새 단정한 정장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 "딸이 보고 싶다"는 음성이 담긴 영상까지 만들어진다.

명절을 앞두고 SNS를 통한 사진 복원 요청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AI를 활용한 사진 복원이 손쉬워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모습이다. AI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SNS를 매개로, 기술에 능숙한 젊은 세대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의 모습을 복원한다.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얼굴은, 그렇게 다시 또렷해지고 있다.

귀성하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1인 가구 여성의 모습. 본문 기사와 관련 없음. 매일신문 DB.

◆ 줄 서는 간식 들고 귀성… '유행'된 설 선물

전통적인 의미의 설을 쇠지 않으면서, 귀성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스팸이나 샴푸 같은 전통적인 명절 선물세트는 MZ세대 귀성객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대신 부모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요즘 유행' 제품을 들고 고향을 찾는 모습이 늘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이른바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다.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 간식으로 알려지면서, 설을 맞아 이를 사 들고 귀성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선아(27) 씨는 "부모님은 우리가 사다 드리지 않으면 직접 사 드시지 않을 것 같다"며 "이럴 때라도 새로운 걸 경험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날짜에 맞춰 미리 예약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변에도 설 맞이해서 두쫀쿠를 사 가려는 친구들이 많아 예약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명절 대세 된 '차례상 대행'

경산에 거주하는 한동호(40,가명)씨는 2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차례상 대행 업체'를 이용한다. 한 씨는 "아내가 제사 음식 준비에 힘겨워해 처음 대행업체를 이용할 때는 집안 어르신들의 반대가 심했다"며 하지만 "음식 품질이 만족스럽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이제 어르신들도 만족스러워하신다"고 했다.

명절 음식에 부담을 느껴온 MZ세대 젊은 부부들은 "빨리 차례 지내고 해외여행 가자" 며 대행 서비스를 찾고 있다. 최근들어 명절 연휴를 '휴가'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그래도 차례를 안 지내는 것보단 대행 업체를 이용하더라도 지내는 게 낫다"며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설을 앞둔 2025년 1월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사과 매대에서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귀성하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1인 가구 여성의 모습. 본문 기사와 관련 없음. 매일신문 DB.

◆ 명절 대신 일터로

"차라리 일하고, 공부하는 게 낫죠. 설이라고 특별할 게 있나요".

이번 설에 박한별(가명·25) 씨는 설 당일에만 고향인 부산에 가기로 했다. 이번 설에만 특별히 '혼설족'을 택한 건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본가를 떠나온 뒤, 명절마다 반복된 일이었다.

설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 한별씨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그는 고민도 하지 않고 즉답했다. "설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마다 집 근처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연휴 때도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대타를 구하지 않았을까. 그는 어렵게 잡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답했다.

◆ 모이지 않는 집, 가벼워진 설

'자취생'이 아닌 청년들은 다를까.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 '캥거루족' 청년들도 달라진 설 분위기를 체감했다. 황예은(26) 씨의 명절도 한별씨와 마찬가지다. 황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명절 당일에만 잠시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큰집에 가서 다 같이 식사하고, 안부 정도만 묻다가 돌아올 예정이다.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은 10년 전쯤부터다. "증조할머니가 계실 때는 몇십 명씩 모였다. 제사도 지냈다. 외가, 친가도 하루씩 방문하느라 명절이 모자랐다. 이제는 이모, 삼촌 정도만 모이니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명절보다는 가족사, 개인적인 기념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차라리 다른 기념일에 더 많은 가족이 모인다. 조부모님 생신 때나, 칠순, 팔순. 조카들이 태어날 때가 더 많이 모이는 거 같다".

가족 간의 끈끈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조금 반가운 점도 있다. 설 밥상의 단골 주제인 '정치' 논쟁에서 떨어질 수 있게 됐다.

설을 앞둔 2025년 1월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사과 매대에서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 차례 대신 외식

신만숙(54) 씨는 올 명절에는 차례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은 지 십 년이 넘었다. 세 명의 며느리들은 각각 튀김, 나물, 생선 등을 나눠 제사 음식을 준비해 왔는데, '번거롭다'는 큰 형님의 선언 이후 제사는 몽땅 사라졌다.

그래도 명절 분위기를 내고 싶어 매년 조금씩 제사 음식을 만들어왔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쳐 나눠 먹었다. 이제는 그것도 '번거롭다'는 자녀들의 툴툴거림에 없애기로 했다. 대신 가족들이 모여 외식을 하기로 했다.

신씨 주변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주부들이 많다. 허리를 굽혀 제사 음식을 차릴 바에야 일본, 중국 등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신씨 가족들도 이번 연휴에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래도 명절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흩어져 지내는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어서다. "가족들이 다 모이기만 해도 명절 분위기가 나요. 굳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얼굴만 봐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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