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퍼지는 '국방비' 미지급 사태, '한동훈 심야 제명' 일파만파, 피자헛 대법 판결 '일파만파', ICE 요원, 30대 여성 사살 '일파만파'] 등등. 최근 뉴스에서는 일파만파가 빈출했다.
'일파만파'(一波萬波)는, '한 일, 물결 파, 일만 만, 물결 파'로, "하나의 물결이 연이어 많은 물결을 일으키다"라는 뜻이다. 어떤 자그마한 사태, 영향, 소문이 이에 그치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연쇄적으로 수많은 사건으로 번져나가는 상황을 비유한다. 그래서 부정적, 긍정적 두 가지 의미로 다 사용한다.
일파와 만파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남송 말기에 나온 『오등회원』권5 '선자덕성선사'(船子德誠禪師) 부분의 다음 시이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길 낚싯줄을 바로 아래로 드리우니),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한 물결 일렁이자 만 갈래 물결이 뒤따르네), 야정수한어부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가워 고기 물지 않자),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한 배 가득 텅 빈 곳, 밝은 달빛만 싣고 돌아오네)" 시 속의 '일파재동만파수' 일곱 자는 '일파만파'와 내용은 같으나 사실 사자성어가 아니다.
참고로 시의 주인공은 당나라 때의 '화정선자'(華亭船子) 선사로,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 지었다. 그는 약산유엄(藥山惟儼)이라는 선사의 제자다. 법명은 덕성(德誠), 생몰연대는 불분명하다. 절강성 소주 '화정'(華亭)의 오강(吳江)에서 '선자'(船子) 즉 뱃사공 노릇을 하며 수행했기에 '화정'이라는 지명에다 뱃사공의 '선자'를, 게다가 법명인 '덕성'까지 붙여 제법 길게 '화정선자덕성선사'라고도 하고, 또는 '화정선자' '화정덕성' '선자덕성' 등으로도 부른다.
이후 위의 시는 불가(佛家)에서 제법 유명해졌다. 그 계기는 『금강경오가해』에, 남송 때의 선사 야부도천(冶父道川)이 풀이한 부분에, 이것이 인용돼있기 때문이다. 책이 많이 읽힘에 따라 덩달아 시도 유명해진다. 물론 '일파재동만파수'라는 구절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이 법문 때 자주 언급해왔다.
그런데, '일파만파'라는 사자성어는 어디에 나오는가?, 남송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가 자신의 서재인 '식재'(息齋)에 부쳐서 쓴 육언시 '제청식재육언'(題請息齋六言)에 나온다: "냉난구우금우(冷煖舊雨今雨: 싸늘할 적도 따스할 적도, 옛 친구였다가 새 친구였다가), 시비일파만파(是非一波萬波: 시비가 한번 물결치면 만 갈래로 출렁이네), 벽하선고달마(壁下禪枯達磨: 벽 아래 앉아 참선하는 깡마른 달마 같고), 실중병착유마(室中病着維摩: 방안에 몸져누운 유마거사 같아라)" 세상 인정은 변덕스럽고, 사사건건 말도 탈도 많다. 수시로 시시비비가 갈려 출렁댄다. 범성대의 위 시는,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덕무의 저술을 엮은 『청장관전서』에 인용되기도 한다.
근대기 한국에서는, 정치와 사회의 맥락에서 일파만파가 빈출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입장에서는, "일파만파로 허다 분규 착잡한 가운데…; 일파만파 조선 전도(全道) 소란; 전 조선 학생 운동…시위행렬, 일파만파로"처럼, 작은 사건이 집단적 행동으로 번지는 데 예민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썼다. 그러나 조선 측은, "일파만파로 마침내 조선의 독립을…"처럼, 작은 움직임이 독립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긍정적인 의미로 썼다.
나비효과처럼 긍정의 기운이 일파만파인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