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기자의 '그 사람']윤석준 대구 유림회장 "85년, 화려한 흔적들"

입력 2026-02-1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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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덕담 "친한 사람일수록 입조심 하세요"
SKY 대학원 섭렵, 美 웨스턴대 경영학 석사 "스펙 짱!'
문화예술인과 30년 교류, 늦깍이 골프사랑 '초고속 싱글'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은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은 "유림은 과거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소통해야 한다"며 "전통 계승과 세대 화합을 바탕으로 향교 교육의 현대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85년 동안 할 거, 못할 거 다 했습니다."

윤석준 대구 유림회장(성균관 33대 수석 부관장)은 설 연휴 아래 이 코너의 적임자라는 판단으로 지난 2일 (주)벽산기업 대표실에서 4시간 동안 만났다. 때마침 지난 85년 세월의 흔적을 담아낸 [나와 함께 한 백년지(百年誌] 마무리 집필 중이었다. 백과사전과 같은 사진첩을 보며 '어떻게 이 많은 일들과 직책을 다 맡을 수 있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다.

1941년에 비슬산 줄기가 낙동강 하류로 연결되는 파평 윤씨 가문(달성군 논공읍 하리)에서 태어난 그는 온 몸으로 부딪치며, 한세기 가까이 파란만장 광폭 행보를 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잘한 것은 만 21세가 되던 1962년에 '내조의 끝판왕' 구월점 여사를 인생 파트너로 맞은 것이다. 그의 인생철학을 통해 설 덕담을 들어본다.

"친한 사람일수록 본인의 단점은 물론 남의 단점도 말하지 말거라. 그분의 입은 천개, 만개가 되고, 너의 실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은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은 "유림은 과거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소통해야 한다"며 "전통 계승과 세대 화합을 바탕으로 향교 교육의 현대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SKY 대학원 섭렵, 美 웨스턴대 경영학 박사

윤 회장의 학력은 가히 상상 초월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주경야독으로 18세에 달성군 논공면 지방 공무원이 되었으며, 이후 영남대 상경대학을 졸업했다. 화려한 스펙은 대학 졸업 이후 시작된다. 연세대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시작으로 서울대 경영 및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간다. 웨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고위 정책과정까지 수료했다.

공무원을 그만 둔 이후에는 사업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대구 성서공단에 벽산기업과 매일식품을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미국 유학에서 배웠던 경험들과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인맥들을 활용해 각종 사회활동도 다채롭게 병행했다. 1970년 경북 관광협회장에 이어 1971년 서울신문 대구경북 지사장까지 맡았다. 1979년 366지구(현 3700지구) 새대구클럽 창립회원으로 시작해 총재 특별대표까지 역임했다.

1989년에는 현풍학교 향림회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2015년 성균관 달성 유도회장 ▷2018년 성균관 부관장 ▷2019년 성균관 수석 부관장 ▷2021년 대구 유림회장까지 맡았다. 1996년에는 세계프로레슬링(G.W.F) 대회장까지 맡기도 했다. 그는 "배움은 나의 영원한 재산"이라며 "지혜로운 욕심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조언했다.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이 자신의 삶을 담은 기록집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이 자신의 삶을 담은 기록집 '나와 함께한 백년지' 출판을 앞두고 책의 내용과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58 개띠, 나이를 모르고 살았노라"

윤 회장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58년 개띠"라고 한다. 58년생이 아니라 85년 인생을 나이를 잊고 살아왔다. 백세시대에 딱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지방 공무원으로 시작해 기업가로 변신해 전 세계를 누비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1분1초를 아끼며 살았다. 85년을 되돌아보니, 화려한 업적들과 함께 작은 행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윤 회장의 집안에는 늘 좋은 일들이 끊이질 않았다. 3대에 걸쳐 효부상을 수상했다. 김경상 할머니에 이어 채수금 어머니 그리고 아내인 구월점 여사가 대를 이어 파평 윤씨 종친회가 공식 인증하는 효부가 됐다. 그는 "할머니, 어머니도 그 시절에 온 동네가 인정하는 효부였지만, 여지껏 한번도 집안 일에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아내의 어진 마음에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자녀는 아들만 셋이다. 영대·창대·정대 씨로 며느리 셋을 맞이해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장남 영대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장군(준장)으로 전역해 현재 대구시 군사시설이전본부장을 맡고 있다. 차남 창대 씨는 뇌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손자 성현 씨는 군 복무 중 아이티 파병단에 이름을 올렸다. 늘 배움을 강조하는 집안 분위기 탓에 첫째 며느리 신성임 씨도 경북대 농학박사 학위를 땄다.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이 지난 2021년 성균관 수석부관장 취임 당시 받은 축하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윤석준 대구유림회장이 지난 2021년 성균관 수석부관장 취임 당시 받은 축하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문화예술인 그리고 골프를 사랑한 남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윤 회장은 (주)벽산기업을 본격 궤도에 올려놓은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그 세월이 어언 30여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예술인 등과 주고 받은 그림 또는 서예 연하장들만 모아 10폭, 12폭 병풍을 4틀이나 만들 정도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81년 대구 대명동 자택을 직접 방문해 거실에서 직접 그린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지역 예술인들을 도와주는 문화 메세나 활동도 이어갔다.

골프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지천명(50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지구 상에서 최고의 신사 운동"이라며 "제 성격과 적성에 딱 맞았다. 인의예지((仁禮義智)를 겸비한 매너운동"이라고 극찬했다. 늦깍이 골퍼였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배웠다. 입문 15개월 만에 '싱글'(79타 이하)을 쳤으며, 이븐파(72) 기록도 갖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친선 골프대회 때 롱기스트( 268m) 트로피도 갖고 있으며, KPGTA 티칭 프로에 합격도 했다.

장학사업과 종친회 활동에도 전력을 다했다. 자수성가한 만큼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돌보는 일에도 늘 관심을 쏟았다. 모교인 현풍중·고교에 총동창회장을 맡아, 10년 넘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현풍향교에는 초대회장을 맡아, 향림장학회를 설립했다. 또, 기업 차원에서도 벽산장학회를 통해 매년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1994년에는 경북 향교 회장과 중앙회 부회장을 맡아, 한국 도덕성 회복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정말 후회없이 살았노라"고 갈무리 멘트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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