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의 두발 산책] 노래가 된 골목, 영원한 가객을 만나다

입력 2026-02-2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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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대로의 소음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 방문객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노랫말이 적힌 벽과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골목은 도심 속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신천대로의 소음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 방문객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노랫말이 적힌 벽과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골목은 도심 속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신천대로 인근을 걷다 보면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음에 옆 사람의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로변에 붙은 김광석 다시그리길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소음은 잦아들고, 노랫소리와 기타 선율이 골목을 채운다. 귀를 쫑긋하며 자리에 서서 노래를 감상하는 이들, 벽에 적힌 노랫말을 눈으로 읽는 이들... 김광석의 노래는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 영원한 가객 걸어온 길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됐으면 합니다". 이 말을 남긴 김광석은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대구에서 머물렀다. 중학생 시절 바이올린을 접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고, 대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1학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창단 멤버로 가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학창 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그룹 '동물원'의 1집은 그의 공식적인 음악 활동의 출발점이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먼지가 되어'… 이후 셀 수 없는 대표곡을 쏟아내며 대중의 찬사를 받는다.

울고 웃으며 기타를 든 김광석의 모습이 벽화로 재현돼 있다.
울고 웃으며 기타를 든 김광석의 모습이 벽화로 재현돼 있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등 노랫말이 강렬한 색채와 어우러져 골목에 생기를 더한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음악에 담긴 철학은 이 골목과 닮았다. 화려하지 않고, 주택과 시장과 멀지 않아 관광객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길이다. 그의 생전 인터뷰와도 결을 같이 한다. "제 노래는 그저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고 느끼는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아낸다고나 할까요".

◆ 인기 비결, 세대 넘어 공명한 노래

골목에 울리던 '서른 즈음에' 역시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가사를 자랑한다. 실제로 자신이 30살이 되면서 겪은 고뇌를 담았다. 그는 "30대쯤 되면 뭐 하나 정해놓고 아등바등 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답답해져서 그런 내용을 담아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며 "노래 가사처럼 된다고 해서 한동안 안 불렀던 노래다"고 했다.

누구에게다 공감을 사는 가사는 골목 벽에 또렷하게 기록됐다. 이미 한참 30대를 지나온 것처럼 보이는 방문객 한 명은 한참 벽화를 바라봤다. 벽화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생각에 잠긴 듯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인기는 식지 않았다. 솔로 활동을 이어가며 정규 앨범 4집과 리메이크 음반 '다시 부르기' 시리즈 2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팬들에게도 '성실한' 가수였다. 인기를 얻은 뒤에도 대학로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무대를 이어갔고, 1995년 8월에는 통산 1천 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오락실과 문구점, 뽑기 기계가 줄지어 선 골목.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오락실과 문구점, 뽑기 기계가 줄지어 선 골목.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한때 1천여 개 점포로 붐볐던 방천시장. 쇠락을 겪던 시장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한때 1천여 개 점포로 붐볐던 방천시장. 쇠락을 겪던 시장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골목, 다시 노래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 골목에서 되살아났을까. 배경에는 인근 방천시장이 있다. 시장은 한때 점포 수가 1천 개에 달할 정도로 붐볐다. 쌀과 떡이 유명한 시장으로 유명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급격히 쇠락했다. 손님이 끊긴 시장에는 오래된 건물만 남았다.

활로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이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김광석을 '다시 그리기'로 했다. 그렇게 망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시장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 시절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가게들도 덩달아 자리 잡았다. 이제는 보기 어려운 오락실과 문구점, 뽑기 기계가 줄지어 영업 중이다. 저렴한 가격에 혹한 사람들은 자리에 서서 구경한다. 입안을 색소로 온통 물들이는 불량식품 두어 개를 구매해 먹어보고, 손톱만 한 장난감이 쏟아지는 뽑기 기계를 돌리며 추억에 젖는다.

그의 인생 철학도 이 골목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그의 측근들은 김광석이 무명 가수들을 도왔다고 회상한다. 라디오 진행을 시작하고 공연이 대박난 후, 큰돈을 만지게 된 김광석은 돈이 없어 음반을 내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돈을 건넸다.

신천대로의 소음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 방문객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노랫말이 적힌 벽과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골목은 도심 속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신천대로의 소음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 방문객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노랫말이 적힌 벽과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골목은 도심 속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현재 방천문화예술협회가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12회를 맞은 예술 페스티벌이 열릴 만큼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청년 작가들은 김광석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을 벌이며 관람객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골목 조성이 시작된 2011년 이후로 시간이 적지 않게 흘렀다. 여전히 찾는 발길은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 야외 콘서트홀을 울리던 공연은 줄었고,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던 가요제도 중단된 지 오래다. 벽면에 그려진 김광석의 얼굴에는 세월의 때가 묻어 어두워지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 상업과 예술, 그리고 김광석이 교차하는 이 골목을 둘러봐 주길 바란다. 노래로 되살아난 골목이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이 골목이 오래도록 가객을 그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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