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의 두발 산책] 책 만들던 역사가 고스란히… 이제는 '읽는' 골목으로

입력 2026-02-0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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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2동 행정복지센터 옆 인쇄골목 역사관에 전시된 금속 활자들. 한글과 한자가 크기별로 정리돼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남산2동 행정복지센터 옆 인쇄골목 역사관에 전시된 금속 활자들. 한글과 한자가 크기별로 정리돼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으로 이어지는 대로. 형형색색 간판이 덧붙은 골목에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기획, 인쇄, 제작소라는 이름을 단 오래된 가게들. 불을 켜고 하루를 버티듯 문을 연다.

한때 1천여 개 업체가 몰려들었던 대구 인쇄골목이다. 열기는 식은 듯 보이지만, 골목에는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 종이와 글자가 모이던 곳, 영남

영남은 인쇄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였다. '추로지향(鄒魯之鄕)'. 유교적 예절과 문화가 융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족보와 문집, 효행록을 찍어내는 목판 인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민간에서 다져진 인쇄술은 근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인근 종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재전당서포'는 당시 대구 인쇄의 중심지였다. 목판과 납활자를 이용해 책을 찍어냈는데, 이곳에서 인쇄된 책 가운데 지금까지 실물이 남아 있는 것만 43종에 이른다. 유학서적은 물론 '대학언해' 같은 언해본, 점술 종합 해설서인 '진본 황극책수' 등 취미서적까지 직접 인쇄·판매했다.

이곳에서 일하던 서장환 선생은 대구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 중 한 명이다. 출판부에서 일하며 3·1 독립선언서와 구호를 몰래 찍어 시민들에게 나눴다. 그 죄로 고문을 당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임시정부 포고문과 경고문, 식민 통치를 고발한 '자유신보'를 인쇄하며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인쇄는 그렇게 저항의 수단이 됐다.

남산2동 행정복지센터 인근 역사관에 보존된 금속 활자. 크기와 용도별로 정리된 한글·한자 활자들이 과거 인쇄 현장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남산2동 행정복지센터 인근 역사관에 보존된 금속 활자. 크기와 용도별로 정리된 한글·한자 활자들이 과거 인쇄 현장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기계와 사람이 모인 자리

인쇄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건 1950년대다. 6·25전쟁을 피해 내려온 서울의 인쇄시설과 인력이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경상감영이 있던 도시 중심, 많은 유동인구, 사통팔달 교통망은 인쇄업자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북성로와 가까웠다는 점도 중요했다. 글자를 또렷하고 촘촘하게 찍어내기 위해서는 섬세한 세공 기술이 필요했는데, 북성로에는 그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다. 한때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던 이들이다.

당시 대구에서는 인쇄기계도 직접 만들었다. 활판인쇄기부터 제단기, 호침기까지 대부분을 자체 제작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충남 공주의 보존관인 '책공방 북아트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존된 기계 상당수에는 '대구 제작'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다만 인쇄업체들이 처음부터 남산동을 택한 것은 아니다. 유동인구가 많고 북성로와 더 가까운 중앙로에 먼저 모였지만, 지가와 임대료가 오르면서 하나 둘 남산동으로 이동했다. 지금과 같은 인쇄골목의 형태가 갖춰진 건 1970년대 이후다.

기술 변화에도 골목은 빠르게 적응했다. 또렷하게 인쇄가 가능하도록 고무판에 한 번 인쇄물을 찍어낸 뒤 다시 종이에 입히는 '옵셋' 인쇄를 거쳐 1990년대 디지털 인쇄 시대로 넘어왔다. 방식은 바뀌었지만, 골목의 원칙은 같았다. '지금 가장 잘 찍히는 방법'을 택하는 것.

책을 찍어내던 인쇄골목은 이제 책을 읽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커피 향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풍경이 골목의 새로운 일상을 만든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책을 찍어내던 인쇄골목은 이제 책을 읽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커피 향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풍경이 골목의 새로운 일상을 만든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인쇄기가 멈춘 뒤에도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쇄업계는 불황을 피하지 못했다. 인쇄물을 찾는 사람은 줄었고, 다이어리나 달력, 현수막을 제작하던 기업들도 사라졌다. 인쇄기가 멈춘 가게가 하나둘 늘었다.

계산오거리에서 골목 끝자락까지 걷다 보면, 한때 골목을 채웠던 서점들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곳은 두 곳 남짓. 갓 인쇄한 책과 중고책이 도로까지 쌓여 있던 풍경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았다. 골목에는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그렇다고 모든 흔적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남산2동 행정복지센터 옆 작은 역사관에는 인쇄골목의 시간이 남아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금속 활자들. 한글과 한자가 크기별로 정리돼 있다.

당시에도 강조가 필요하면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특수문자를 사용했다. 오늘날 디지털 인쇄로는 1초면 끝날 일이지만, 그땐 크기별 활자를 미리 제작해야 했다. 그 활자들 역시 기록관 한쪽 벽면에 차곡차곡 쌓여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인쇄물을 소비하는 문화도 희미하게나마 이어진다. 몇몇 중고서점이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고, 인쇄골목 초입 '문우관' 옆에는 대형 중고서점도 자리 잡았다. 서점 사이사이로는 작은 카페들이 들어섰다. 젊은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인쇄골목' 대신 '카페골목'이라 부를 정도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책장을 하나 둘 넘기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책을 찍어내던 골목은 이제 책을 읽는 골목으로 변하고 있다. 기계 소리가 줄어든 자리에는 커피 향과 이야기가 스며들었다. 찍어내는 일은 끝났지만, 인쇄 골목은 여전히 도시 한켠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 인쇄골목 보행로에 설치된
대구 중구 남산 인쇄골목 보행로에 설치된 '남산 100년 인쇄골목' 표식 위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한때 수많은 인쇄소가 밀집했던 이곳은 도심 속 산업 유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일상의 길로 남아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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