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는 레트로 패션… 외국인 사로잡은 'K-그래니 코어' [트렌드경제]

입력 2026-01-25 12: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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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니 코어' 유행에 김장조끼 재조명
군밤장수 모자, 할머니 스카프도 인기
"과거 유행 아이템 요즘 감성으로 소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점포에서 판매 중인
대구 중구 서문시장 점포에서 판매 중인 '김장조끼'. 정은빈 기자

짙은 푸른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꽃무늬. 할머니들이 겨울철마다 흔히 입는 방한조끼, 이른바 '김장조끼'가 패션 아이템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대구 중구 서문시장과 반월당 일대 상점들도 '대박 조끼' '연예인 착용 조끼' 등의 안내 문구를 걸어 놓고 김장조끼 판매에 한창이다. 할머니들 일상복을 연상케 하는 '그래니(Granny·할머니) 코어'가 뜨면서 김장조끼와 '군밤장수 모자' 등이 올겨울 MZ세대를 사로잡은 모양새다.

◆김장조끼가 힙한 아이템으로

김장조끼는 MZ세대 사이에서 '힙(hip)'한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 달간 김장조끼 검색량은 전월 대비 699%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도 지난해 12월 김장조끼 검색량은 전월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검색량은 20,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장조끼 유행의 시작은 '촌캉스(촌+바캉스)' 문화 확산이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 감성을 즐기기 위한 '촌캉스 룩'이던 김장조끼는 시각적 재미와 보온성에 주목한 캠핑족들의 '캠핑 룩'이 됐고, 이후에는 일상에서 즐기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 에스파 멤버 카리나와 같은 연예인이 착용한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확산하면서 젊은 세대 유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기 아이돌의 착용을 계기로 '할머니 옷'이 트렌디한 패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활동성과 보온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디자인에 주목했다. '의도된 촌스러움'과 익숙하지만 새로운 '반전미'가 소비심리를 자극한다는 반응이다. 유행은 해외시장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등에선 '플로럴 누빔조끼(Floral quilted vest)' '김치조끼(Kimchi vest)' 등의 이름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 주요 브랜드에서도 그래니 코어가 반영된 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아디다스는 최근 신상품 '아디다스 리버티 퀼티드 재킷'을 내놨다. 영국 프린트 원단 브랜드 리버티와 협업한 시리즈로, 밝은 빨간색 바탕과 화려한 꽃무늬 패턴이 특징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상품은 한때 전 치수가 동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는 꽃무늬 원단에 어깨와 목 부분에 털을 부착한 '발렌티노 아프헤 리베 자카드 패턴 고블랭 베스트'를 출시했다. 약 630만원인 발렌티노 제품과 몽클레어의 230만원대 다운 베스트는 김장조끼 디자인과 유사하다는 반응을 얻으면서 누리꾼들 이목을 끌기도 했다.

SNS에 올라온
SNS에 올라온 '군밤장수 모자' 관련 게시물. SNS 캡쳐

◆'군밤장수 모자'도 인기몰이

'레트로'(Retro·복고풍)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군밤장수 모자로 불리는 방한 모자도 인기몰이하고 있다. '트루퍼 햇(Trooper hat)'이다. 귀를 완전히 덮는 형태인 이 모자는 군인과 경찰, 사냥꾼 등이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쓰던 모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과 비,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방수 겉감과 두꺼운 충전재, 털 안감과 턱끈을 부착해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밍크 털 등으로 풍성한 디테일을 살린 제품도 등장했다. 군밤장수 모자 역시 코르티스 멤버 주훈, 엔시티 위시 멤버 리쿠 등 남자 아이돌들이 열풍에 불을 붙였다.

신세계그룹의 패션 플랫폼 W컨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부터 12월 9일까지 고객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트루퍼 햇, 발라클라바, 레그워머 등 '힙트레디션(Hip-Tradition)'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0% 증가했다.

힙트레디션은 최신 유행에 밝고 개성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힙하다는 표현에 전통이라는 단어를 더해 만든 신조어다. 전통적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최근 패션계 추세라는 분석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때 유행하던 아이템을 요즘 감성에 맞게 소비하는 게 젊은 소비자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러시아식 헤드 스카프인 '바부슈카(Babushka)'도 인기를 끌고 있다. 바부슈카는 할머니를 뜻하는 러시아어로, 얼굴 외곽을 두르고 턱 아래에서 꼬아 묶는 식으로 사용한다. 지드래곤 등 연예인이 스타일링에 활용하면서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이들 제품이 인기를 얻는 건 보온성과 편안함이라는 본질에 주목하는 MZ세대 소비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생활성이 돋보이는 아이템을 재발견하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 재미와 자기표현을 추구하면서도 편안함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것이 대세"라고 말했다.

바부슈카 제품. W컨셉 제공
바부슈카 제품. W컨셉 제공